여든 여덟 개의 절집이 오헨로 길을 만들었다는 것은 결과론적이다.
홍법스님의 설법 여정이 오헨로 길이 되었다는 것 또한 그렇다.
정작으로 오헨로 길은, 그 길에 연하여 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친절함과 인정의 길이기에.
햇빛이 쨍한 오후의 도로변을 걷노라면, 트럭을 세우고 바나나 두 쪽을 접대해주신 어르신,
또 다른 길에서 차도를 건너 오셔서 딸기를 건네주신 어르신,
이름 없는 절집을 들렀을 때, 과자 한 봉지, 사탕 몇 알을 접대로 주신 아주머님들,
비를 맞고 산을 내려왔을 때, 준비된 음식이 없는 우리를 위해 편의점까지 차를 태워 도시락을 챙겨주신 어르신,
영업이 끝난 우동집 앞에서 텐트를 펼치고 저녁 걱정을 하던 차에 따스한 주먹밥을 가져다 주신 우동집 아주머님,
물집 잡힌 발바닥을 건사하느라 슈퍼 앞에서 힘들어 할 때, 오토바이 깔판에서 밴드를 찾아서 챙겨주시던 장보러 오셨던 아주머님,
고갯길 들머리에서 마차와 튀밥 그리고 차 한잔의 여유를 주시던 분,
오헨로 작은 정자에 마련된 누군가의 기원이 담긴 소소한 물건들, 수건, 양말, 교통안전 인형들......
이루다 헤아릴 수 없는 따스함과 친절함을 오헨로 길에서 만난다.
길은 항상 마음이 따스한 곳으로 열려있고,
우리는 그저 따라갈 뿐이다.
P/S
참고로 오헨로お遍路에서 お는 (한자어 앞에 붙는 미화어), 遍路는 ( 편로, 두루 돌아다니는 길, 遍歷)으로
시코쿠의 88개 사찰을 두루 돌아다니는 둘레길 (종교적 입장에서는 순례길)을 의미한다.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9세기 홍법대사 (弘法大師, 코보 다이시)가 다녔다는
시코구(四国)의 88개 사찰을 섬을 빙 돌아오게 되는 원형 순례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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