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와 소음, 네이트 실버, 이경식 옮김, 더 퀘스트
'들어가며' 중에서
.... 셰익스피어는 키케로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식대로 사물을 추론한다. 그 사물의 목적을 지워버린다."
키케로의 경고는 새롭게 발견된 풍부한 정보를 붙잡으려는 사람들이 귀담아야 할 좋은 충고이다. 수많은 소음에서 올바른 신호를 가려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데이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개 우리가 듣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보통 그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리라고 확신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비록 예언이라는 발상, 곧 숙명주의.점술.미신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발상에 근거하긴 하지만 동시에 좀 더 현대적이며 근본적인 생각, 곧 우리가 테이터 속 신호들에서 편익을 취할 수 있도록 신호를 해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카시우스는 카이사르를 제거할 음모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면서 브루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언젠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느 생각이 점차 퍼지고 있었다. 오늘날 예언하다 predict와 예측하다 forecast는 말은 별 구분 없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시대에 두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전자는 예언자나 점쟁이가 쓰는 말이었고, 후자는 카시우스의 발상과 비슷했다.
forecast는 독일어가 어원이고, predict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예측 forecasting은 신성로마제국의 세속이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프로테스탄트의 세속을 반영했다. 예측한다는 것은 전형적으로 불확실성이라는 조건에서 계획을 세우는 일을 의미했다. 예측은 신중함. 지혜. 부지런함을 전제로 하는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통찰 foresight이라는 단어와 뜻이 비슷했다.
이런 발상이 내포하는 신학적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지상의 존재에게는 덜 복잡했다. 그 의미들은 프로테스탄트의 노동관과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막스베버는 이것이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이렇게 예측이라는 발상은 진보라는 개념과 굳게 연결되어 있었다. 책에 담긴 모든 정보는 우리가 삶을 계획하고 세상사를 유익하게 내다보는 데 도움을 주어야 마땅했다.
....이 진화적 본능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패턴이 없는 곳에서 패턴을 본다는 게 문제...
"사람들은 무작위의 소음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일을 늘 해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은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현대 세상에 언제나 멋들어지게 적용하지는 않는다. 여러 편견을 알아차리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새로 보태지는 정보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편익은 최소한에 머물거나 어쩌면 오히려 줄어들지도 모른다.
인쇄술이 탄생한 이후에 나타난 정보의 과부하는 과거보다 더 큰 분파주의를 낳았다. ...인터넷이 출현한 뒤로는 속도가 한층 빨라진 듯하다.
당파적 신념은 더 많은 정보가 우리를 진리에 더 가까이 데려다주리라는 믿음을 배신할 수 있다. ...한편 정보의 양이 하루에 2.5 퀸틸리언 바이트씩 늘어난다고 하지만 유용한 정보의 양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늘어나지 않는다. 이는 거의 확실하다. 정보 대부분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소음은 신호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검증할 가설은 너무 많고 챙겨야 할 테이터 또한 너무 많다. 하지만 객관적 진리의 양은 상대적으로 일정하다.
... 월드와이드웹 같은 복잡한 체계는 이 같은 속성 (실수의 패턴을 바꾸어 버리는, 실수 하나가 발생하면 쉽게 재생산될 수 있는)이 있다. 복잡한 체계는 단순한 체계 (인쇄술에서의 필사와 같은) 보다 오류가 덜 생기겠지만, 생겼다 하면 엄청난 낭패를 초래한다. 자본주의와 인터넷은 정보를 확산하는데 믿을 수 없으리만큼 효율성이 있는 기제라서, 좋은 생각뿐 아니라 나쁜 생각 또한 빠르게 퍼뜨릴 잠재력이 있다. 나쁜 생각들은 불균형 효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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