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필경사 바틀비 - I would prefer not to 선택할 수 없는 자의 선택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4. 11. 5. 00:01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공진호 역, 문학동네

 

 

나는 초로에 접어들었다....먼저 나로 말하자면 젊어서부터 줄곧 평탄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깊은 확신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다....고백하건대 나는 그 (시적 열의는 별로 없는 저명인사였던 고 존 제이컵 애스터)의 이름을 되풀이해 말하기 좋아한다. 그의 이름을 발음하면 둥그렇게 오므린 입안에서 소리가 회전하는 듯한데, 그것이 마치 금괴를 두드리는 듯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

나의 사무실은 월스트리트 2층에 있었다...그쪽 창밖으로는 높은 벽돌 벽이 훤이 내다보였다. 

 

어느 날 아침, 한 젊은이가 내가 낸 광고를 보고 찾아와 사무실 문턱에 미동도 없이...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그 모습이! 그가 바틀비였다.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 저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 비인간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저항을 하는 사람의 소극성이 전혀 무해하다면, 전자는 기분 나쁘지 않을 경우 자신의 판단력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는 것을 상상력으로 관대하게 추론하고자 애쓸 것이다. 

 

난생처음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아린 우수에 사로 잡혔다. 지금까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슬픔밖에 겪여 보지 못했다.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유대가 이제 나를 저항할 수 없이 끌어당겨 나는 우울해졌다. 형제로서의 우수! 바틀비와 나는 아담의 아들들이었다. 

 

내가 최초로 느꼈던 감정은 순전한 우울과 진심 어린 동정심이었다. 그러나 바틀비의 쓸쓸함이 내 상상 속에서 점점 커져갈수록, 그만큼 바로 그 우울은 두려움으로, 그 동정심은 혐오감으로 녹아들었다. 비참함에 대한 생각이나 비참한 광경은 어느 선까지는 우리에게 가장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동시에 끔찍한 진실이다. 그 이유가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탓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과도한 구조적 악을 고칠 희망이 없다는 데 기인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지금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은둔처로 물러갔다. 

 

"지금은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것이 주검같이 맥없고 침울한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필경사와 관련된 걱정거리들이 모두 영겁의 세월 전부터 예정되었으며, 바틀비는 전적으로 지혜로운 신의 어떤 신비로운 뜻에 따라 나와 함께 살도록 숙사를 배정받았다는 확신에 점차 빠져들었다. 그 뜻이 무엇인지는 필멸의 인간인 내가 헤아릴 바 아니었다.

 

"전혀 마음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특별하지 않아요."

“No; I would prefer not to make any change.” “Would you like a clerkship in a dry-goods store?” “There is too much confinement about that. No, I would not like a clerkship; but I am not particular.”

 

"거기엔 무언가 확정적인 게 없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고정적인 게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하지 않아요."

“Not at all. It does not strike me that there is any thing definite about that. I like to be stationary. But I am not particular.”

 

"아뇨,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변경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No: at present I would prefer not to make any change at all.”

 

바틀비는 워싱턴의 사서 死書 우편물계의 하급직원이었는데....날 때부터 그리고 운이 나빠서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상상해보면...절망하며 죽은 자에게 용서를,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은 자에게는 희망을, 구제 없는 재난에 질식해 죽은 자들에게는 희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나오기도 한다.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On errands of life, these letters speed to death.

Ah Bartleby! Ah humanity!

(아, 바틀비여! 쓸쓸한 인종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