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속의 전쟁, 마이클 하워드, 안두환 옮김, 글항아리
제2장 용병들의 전쟁
봉건체제가 기원한 프랑스에서는 노르웨이 침략자들에서 맞서 간신히 영토를 보호하려는 시늉 밖에 취하지 못한 후기 카롤링거 왕조의 무능력으로
서열 상 하위에 있다고 여겨졌던 백작들counts로 권력이 효과적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습되는,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독립된 봉토...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었으며,
점점 자신들을 강제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하게 된 국왕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국왕은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할 때마다 가문 소속의 기사들 뿐 아니라 돈을 받고 고용되는 용병soldi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제1장, 28쪽)
영국의 노르만 왕조와 그 후계자들은...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산악지대에 살고 있었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군대를 소집하고 유럽대륙으로 보내 전쟁을 치르도록 하기에는 (수봉자들로부터 받는 60일 관례의 의무적 봉사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우선 영국의 노르만 왕들은 대륙으로부터 용병을 고용했다.
...기사신분 부여를 통해 봉건의무를 강화한 후, 자신들의 의무를 대신할 용병을 고용하는데 쓰일 현금의 납부를 허용했다.
...왕들은 자신의 봉신들과는 현금대체가 아닌 고용계약indenture를 맺었다. 특히 이들은 자신의 섬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위해
군대소집령commission of array을 공표해 지역민들을 보병으로 징집했다. (제1장 32-33쪽)
사실 역사가들은 대개 1494년 프랑스 (중앙의 국고로부터 급료를 지급받은 근대적인 군대의 시초라 칭할 수 있는....)의 침공으로 개시되었던 이탈리아 전쟁[1494-1559]을 '근대유럽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58쪽)
16세기 전반을 메웠던 전쟁은...그 동기면에서 전적으로 중세적이었다. 바꿔 말해, 이 시기의 전쟁은 재산과 왕위계승의 개인적 권리를 주장하거나 방어하기 위해,
아니면 말을 듣지 않는 봉신들을 처단하기 위해, 혹은 이슬람 교도들에 맞서 기독교 사회를 지키기 위해, 또는이교도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치러졌다. (59쪽)
,,,따라서 적어도 16세기 전반부에 있어서 전쟁은 상속권을 둘러싼 개별 군주들 사이의 사적인 다툼이었으며, 결코 국익이라고 여지지는 것을 둘러싼
국가간의 다툼이 아니었다. 당연히 국민들 사이의 전쟁은 더더욱 아니었다. (6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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