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 오카다 히데히로 지음, 강유원/임경준 옮김, 이론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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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대부가 떠받들던 小中華의 허위를 일정하게 논증하고 있는 이 글은
중국의 중심으로 또 한족 중심으로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있던,
(예를 들면 영화 '소림사 18동인'이 그러하고, 소설 '삼국지'가 그러하다)
나의 역사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저자거리의 얘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다시 新 朝鮮으로 회귀하는 後 朝鮮 한국사회를 어찌 해석할 것인지.
굳이 사족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아시아적 문화변방성과 유럽지향성에 대한 자기긍정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비판적 견해를 달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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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쪽) 당나라 시대에는 역사서술의 재료가 될 기록을 편찬하는 절차가 완비되었다. 한 사람의 황제가 세상을 떠나면 그의 치세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연, 월, 일의 순으로 기록하는 실록 實錄이 편찬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록’의 재료는 황제가 날마다 결재하는 공문서, 다시 말해 최고 관청이 황제에게 상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는 제법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실상은 중대한 함정이 여럿 존재하고 있다.
첫 번째 함정은, 대체로 국가의 최고 방침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하급관청에서 상급관청으로 결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황제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극히 소수로 구성된 집단이 내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보통으로, 이러한 결정과정은 문서로 작성하여 보존하는 성격의 것이 아닌 까닭에… 기록될 리가 없다.
두 번째 함정은, ‘정사 正史’의 편찬을 실제로 담당하는 사관의 (114쪽) 성격과 관련된 것… 과거시험의 문제는 유교의 경전에 속하는 ‘오경 五經’에서 출제되는 까닭에… 유교에서 사용하는 정치학적 용어나 관념만은 (종교로서는 소멸되었지만) 살아남아 ….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 즉 가치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결과 당나리 이후의 ‘정사’에서는 (어떠한 중국의 왕조라 해도 정권유지의 실질적인 기반은 군대에 있으나… 군사적인 면을 경시하는 경향 등의) 비현실적인 면이 많이 나오게 된다. …군인들 자신의 목소리는 ‘정사’에서 드러나지 안(고)… 문인관료는 황제의 명을 대행하는 것에 (115쪽) 지나지 않지만, 그들이 편찬하는 ‘정사’에 따르면, …관료야 말로 핵심적인 기반이며… 관료들이 운영하는 문인정치라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120쪽) …1004년 거란의 성종(聖宗)은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북송을 침입하여… 북송의 진종 眞宗과 대치… 여기서 진종이 거란의 황태후를 자신의 숙모로 대하면서 세폐 歲幣를 바치겠다고 약조함으로써 거란과 북송 사이에 화의가 성립되었다. 이를 전연 澶淵의 맹약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121쪽) ‘정통’의 역사관에서 본다면, 북송으로서는 두 명의 황제가 병존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셈…이는 북송에게는 굴욕일 뿐이었다.
(122쪽) <자치통감>의 중화사상은 무엇보다도 남북조시대를 다루는 태도에서… 북조의 연호는 표기하지 않고… 남조(동진,송, 남제, 양, 진)에 속하는 황제들은 ‘황제’라 부르는 반면… 북조의 황제들은 ‘위주 魏主’, ‘제주 齊主’, ‘주주 周主’ 라 부르고…북조는 정통 正統이 아니므로 진짜 황제가 아니라는 서술 태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듬해인 589년 정월 기사부터는 진나라 황제는 진주‘陳主’로 격하시키는 대신에 수나라 문제를 ‘황제’라 부르고 있다. 진나라가 멸망한 해를 기점으로 해서 ‘정통’이 남조에서 북조로 옮겨 갔음을 보여주고자…’ 정통’의 이론을 일관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수나라에 뒤이은 당나라 역시 … 사마광이 섬기고 있던 북송조차도 ‘정통’이 아닌 왕조가 될 위험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치통감>의 이러한 태도에는 북송과 대립하고 있던 거란제국, 즉 요 遼나라를 북조 北朝로 상정함으로 해서 요나라 황제는 ‘정통’이 아니며 따라서 천하를 지배하는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한 가짜 (124쪽) 황제라는 것을 … 주장하고픈 심정이 숨겨져 있다.
<자치통감>이 중국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 예시로 (남송의 주희의 저작으로 알려진, 주희의 제가 조사연이 편찬한)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 59권이다. 이 책은 <자치통감>을 바탕으로 하여 거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항들을 보충하여 중요한 항목을 ‘강 綱’이라 하고, 이에 관한 세부사항을 ‘목 目’이라 이름 붙인 편년사이다. …<자치통감강목>은 대의명분에 따라 사실을 기록한다는 <춘추 春秋>의 태도를 이어받은 것으로 삼국시대의 촉나라와 동진 등을 정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원나라 증선지가 편찬한 <십팔사략 十八史略> 2권이다. 이 책은 <자치통감강목>을 간략하게 정리한 데다 송대 역사를 덧붙인 것으로 중국 역사의 단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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