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식집이란 말이 늘 궁금했었다. 돈가스는 귀하고도 어려운 음식이었다. 내 어린 날에서는.
기차를 닮은 소빵과 학교의 우유급식이 (종이 병마개의 한쪽을 때려서 뻥하고 열리는 서울우유의 병우유가) 부러웠다.
씻지 않아 땟국물이 줄줄했던 우리의 초등시절을 하야니 씻겨줄 만한 그런 우유였다.
그런 점에서 돈가스의 탄생은 제목부터 내겐 도발적이었다.
'튀김옷을 입은 일본의 근대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우리는 결코 어느 역사가가 상상한 것처럼 고기를 잊어버린 민족이 아니었다.....
그저 다수의 사람들이 일생동안 이것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야나기타 구니오 [메이지다이쇼 역사 세상 편]
'675년 덴무 일왕이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래,
1200년간 일본은 육식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 기나긴 전통을 21살의 메이지 일왕이 하루아침에 (1872년) 해금해 버린 것이다.' (26쪽)
돈가스에 앞서 이 책에서는 단팥빵의 역사도 언급한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일본인이 서양의 빵을 어떻게 일본식으로 변형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쌀누룩 빵의 특징으로 일본술의 향기가 날 것, ...당분을 많이 사용해도 왕성한 발효력을 지닐 것....
야스헤에가 창안한 빵은 단팥 소를 안에 넣은 것으로 그 전에는 전혀 없던 것이었다.' (156쪽)
'메이지 시대에 일어난 음식 문화상의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본격적인 서양요리를 흡수/동화해 가면서
독특한 일양절충요리=양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169쪽)
이제 돈가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
'일양절충요리, 즉 양식은 한 마디로 일본음식에 밀가루를 들여와 만든 요리인 셈이다.' (170쪽)
돈가스의 어원은 프랑스어 cotelettte, 송아지 등심을 잘게 자른 영어의 cutlet에서 출발한다.
'1860년대 후쿠자와 유키치가 쓴 [華英通語]에서는 cutlet-가쓰레쓰 吉列로 쓰고있다.'
'송아지 뼈에 붙은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후 밀가루, 계란 노른자, 빵가루를 입혀서
프라이 팬에서 버터로 양면을 갈색이 되게끔 구운 것이다.'
이제 이 소고기를 돼지나 닭고기로 바꾸고, 두툼한 고기로, 고운 빵가루를 일본식의 큰 빵가루로,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 것을 기름 속에 딮 프라이로, 서양채소인 양배추를 곁들이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밥과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꾼 것이 豚+가쓰레쓰 이다.
일왕이 육고기를 해금한 후 23년이 지난 후의 일이란다.
'한편 처음 생길 무렵의 포크가스 먹는 법에는 도쿄 토박이들의 풍취가 남아있다.
먼저 소스를 듬뿍 끼얹어서 조심스럽게 튀김옷과 고기를 분리한다. 고기를 술안주로 한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술과 함께 고기를 다 먹고 나면,
소스가 스며든 튀김옷을 잘게 잘라 밥과 섞어서 즉석 가스밥을 만든다' (199쪽)
에도시대에서부터 시작된 돈가스 이야기는
메이지 유신이라는 역사의 정점을 지나면서
어떻게 쌀에 집착하고 육식을 금하던 일본이 근대 서양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양요리를 일본화하였는지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역할은 덤이다.
청일 전쟁, 러일전쟁, 해군의 역할, 육군의 고집, 뭐 이런 사안들이 얽혀있긴 하다.
혁명은 이렇듯 미시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주장이나 구호가 아니라 식탁에 소고기를 올리도록 만든 그런 세밀함이 역사를 진정 바꾸어낸다.
메이지 일왕은 어쩌면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돈가스의 역사와 별개로
나의 경우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華英通語]에 더 관심이 갔다.
서양의 말을 어떻게 번역하여 들여올 것인가,
들여온 말의 번역어(한자)가 어떻게 좋은 뜻도 함께 가지게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1860년대 했던 그 사람을 둔 일본이 부러운 대목이다.
우리는 이런 무임승차에 익숙하다. 그 무임승차가 나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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