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우키요에의 미 - 머무는 곳에 물들지 말라 불염거 不染居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2. 13. 18:35

고바야시 다다시의 '우키요에 浮世畵 의 미 美'


바닷물을 공부한 이로서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저 파도 목판화 앞에 경건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에서처럼 新奈川沖浪裏의 난바다의 파랑은 아니지만 한낱 잎새같은 저 상선은 너울의 물매를 타고 일렁인다.

멀리 후지산이 오히려 왜소하게 보인다.

무엇인가의 한 절정을 이렇듯 잡아내는 작가의 솜씨는 경이롭다.

그가 좌우명으로 삼았다던 "머무는 곳에 물들지 말라, 불염거不染居"는 절정을 향해 끝간데 없이 나아가 정신의 칼날을 세웠던

한 사내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 만화영화 백일홍-Miss Hokusai는 에도시대의 풍광과 예술혼에 불타는 애비와 큰딸, 절명한 막내와 나무백일홍을 겹치며 서정적으로 풀어내었다.

  아마도 일본의 그 시점은 누군가에게는 돌아가고픈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잡아낸 다른 수작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深川十萬坪이다.

당대에 저 정도의 구도와 풍경을 묘사할 수 있었던 그이의 정신세계가 부럽다.

화면의 절반은 하늘이건만, 밋밋할 뻔한 곳에 독수리 한 마리의 날개를 그려두어 정신세계가 빈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후지산은 여전하고, 매립지의 관목과 쇄파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이 판화는

작가가 '내가 사물을 직접 보고 그 모든 것을 묘사'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장업하게 보여준다.

던져둔 통발에 물 갈매기인가, 잔물결에 몸을 숨기는 생존의 순간을 보여주는 이 그림 앞에

1830년간의 조선 풍경이 오버랩된다.

년표가 보여주는 그것은 8살의 헌종을 등에 업고 세도 정치를 펼치던 그 즈음에,

영국에서는 빈민 구제법이 시행되고 전국 노동자 대회가 열렸다고 기록하고, 발자크는 소설 고리오 영감을 탈고하였다.

동적인 순간을 사진같이 잡아내는 그이들의 예술혼이,

아시아에 있으되 아시아가 아닌 일본의 한 단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