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2. 6. 21:27

Civil Engineer로서 부채 하나 쯤은 가지고 있다.

자연과 조응하는 풍경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혹은 불화하는 풍경이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면피될 수 없다는 점,

오히려 자본의 이익을 위해 풍경을 재배치하거나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나는 오래된 것들과 그로 하여 살아남은 것들에 대한 죄인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그 풍경에는 실제로는 역사의 시간이 녹아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하나의 풍경이 역사적 시간을 중층적으로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 13쪽 옮긴이 이영석 교수의 옮긴이의 말 중에서.


"단지 아름답지만 침묵하는 풍경으로 쳐다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Hoskins


"우리는 지금 현존하는 토지 하사증서에서 이름이 언급된 곳을 부지런히 탐사하여 이들을 확인하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우리는 여우사냥을 포함한 어떤 다른 방식보다도 잉글랜드 시골에 관해 더 진실하고 더 상세한 지식을 얻는다.

이때에 우리는 방책을 기어오르고 깊은 숲 속 늪지대의 개울을 건너며 관목과 습한 여름의 무성한 식생으로 가로막힌 좁을 샛길을 헤쳐나간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늘에 뭉게구름 이는 날에는 시골 전역을 잘 바라보기 위해 바람이 잘 부는 산 마루를 따라서 걷기도 한다.

어느 색슨 시대 토지 하사증서와 2.5 인치 10만분의 1 축척의 지도를 들고 이 작업을 할 때,

몇 마일에 걸친 잉글랜드의 풍경과 지형이 우리의 마음과 심장에 깊이 새겨지는 것이다." - 117쪽 잉글랜드인의 정주


저자의 Inclosure에 대한 묘사는 사뭇 불편하다.

보이는 풍경과 현상으로서는 그 공간을 스쳐간 인간들, 흩어져간 농민의 삶을 보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쫒겨난 이들의 시간과 공간의 역사가 없이 결과로서의 흔적들에 대한 중첩을 당대의 시선으로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살아남은 자의 흔적만이 양피지 위에 그려지기에.

풍경과 도시의 주변부를 함께 들여다 보기 전까지는 이러한 나의 불편함을 지속될 것이다.

'작은 단위로의 경지의 분할'과 '집들이 분산되어 있는 것'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종사하는 '그 업종의 편리성 때문'이라고 보는 한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이 지방에서 개방경포 open field나 어떤 종류든 공동지를 인클로저한 나라 전체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또 다른 두드러진 모습이 있다.

모든 샛길의 완전한 소멸이 바로 그것이다.(296쪽)......

Stockerston이라는 읍락이 있는데....여기서 우리는 개방경포의 인클로저가 1570년대에 시작되었고, 17세기 언젠가에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외딴 농가 Holyoak의 황폐한 촌락터에 이른다.

이곳에서1496년 겨울에 브러디널 경이 목초지를 조성하기 위해 30명의 농민을 그들의 작은 개방경포에서 쫒아냈다.

기록은 우리에게 '그들은 그곳을 떠난 후 할 일 없이 놀거나 죽었다.'는 것을 알려준다.(297쪽)

...그렇다면 레스터셔 풍경의 이 부분(수렵지)은 400년의 시기에 걸친 다양한 세력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하여 매 세대 뒤에는 그 세밀한 것의 무한한 다양성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도로로 한가롭게 잉글랜드 어느 지역이든지 그 풍경을 스쳐 지나갈 때 중요한 것,

우리의 눈길과 정신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이 세밀한 항목들이다." (298쪽)


"증기력의 사용으로.......이리하여 워즈워스가 사회적 산업 social industry라고 불렀던 것이 출현했다.

그들은 더 이상 황야를 찾아 자리를 잡고 노동자가 기숙할 수 있는 촌락이나 마을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제조업자들은 기존 도시 주변에 그들의 공장과 작업장을 서둘러 지었고, 노동자들은 공장주변의 빈터에 세운 연립주택 거리에서 살았다.

공업은 도시의 저지대에 퍼져나갔고, 언덕은 부유층의 거주지로 남겨두었다." (320쪽)


"1793년에 20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자율의 상승만으로도 경제적 지대 economic rent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계급 주택면적의 축소와 질적 하락을 급격하게 초래하는데 충분한 것이었다. ....

건축분야도 역시 투기꾼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파고 들었는데,

그들은 싼 주택에 대한 전례없는 수요를 조장하여 막대한 이윤을 가져감으로써 주택사정을 필요이상으로 악화시켰다.

아무도 이 특이한 기생계급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또는 어떻게 부를 이루는지 연구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날 그들의 후손이 그 부의 기원을 잊어버리거나 무지한 채로 엄청난 부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에 종종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3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