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두 가지 조형법에는.....
극도의 단순화와 선조화(線條化)에 의한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표현법....
다른 하나는 그 선에 의한 표현이 뒷날 서법의 원천으로 되어 선에 의한 먹 예술, 곧 서예를 탄생시킨....'. (109쪽 인체에 관한 문자)
'....문자는 이렇게 (일련의 문화적 행위 혹은 신성관념 등의) 계열로서 존재하지, 고립적으로 끼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든 문자든 항상 체계로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문자는 문화의 발전 단계나 정치적 요구 아래서 태어납니다.
아마도 고대 왕조가 신권적인 신성성을 획득하였을 때 신과 교감하는 수단으로서 문자가 태어난 것....'(114쪽)
'한반도의 고대어와 일본의 고대어 사이에는 공통점이......직접 연결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각각 음운상의 조작을 행하여 친연성을 주장하는 것이지,
같은 말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124쪽, 김사엽의 '고대 조선어와 일본어'에 대한 시즈카의 평가)
*여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 남겨야겠다.
한국이 (엄밀하게는 고대 백제의 문화가) 일본 문화의 원류라고 주장해왔던 부분에 대해서,
이를 지나치게 근대로 끌어와 해석하는 국수주의적 태도를 경계하고픈 것이다.
저자의 음운 조작과 친연성의 주장은 새겨 들을만한다.
그런 공통점을 주장하고자 할 때에는 좀더 역사적 사실과 문헌자료에 기반한 논증이 필요할 터였다.
**일본의 한자를 중국/대만/일본으로 바로 연결시키고픈 시즈카의 열망이,
우리 한자/한문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 하여 씁쓸하다.
***다만 문자를 제의(신성)의 추상화로 해석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인정해야겠다.
설문해자의 해석이 못마땅한 부분을
문화인류학적 해석을 통해 한자를 다시 들여다본 그이의 노력은 존경받을 만하다.
이 책을 읽으며, 최근 '실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분명히 동일한 근거 출발하였으되,
관점의 차이에 따라 유사한 결론이라도 다른 경로를 밟아 논증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식민 사학자들이 그토록 좋아했다던 (실제 내가 그 사람들의 논문을 읽지는 않았다) '실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역사와 문화사적 논증이 없는 '실증'은 영혼없는 신작로를 따라 엉뚱한 나락으로 떨어져 간다는 것을.
'실증'은 다만 출발이고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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