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를 생각하다, 비 윌슨, 까치글방
서론
우리가 나무숟가락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도구란 처음에는 어떤 필요를 만족시키거나 특정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에 채택되지만,
도구에 대한 우리의 애착은 시간이 흐를수록 문화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기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 'technology'는 예술, 솜씨, 기예를 뜻하는 그리스어 'techne'와 무엇인가를 연구하다는 뜻의 'logia'를 합친 것이다.
기술은 ...아주 인간적인 무엇이다. 기술은 때로 도구 자체를 뜻하고, 도구를 고안한 창의적 노하우를 뜻하기도 하며,
사람들이 다를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
부억기술은 인류를 바꾸었다. '무엇'을 먹느냐는 물론이고 '어떻게' 먹느냐까지.
우리는 부엌기술이 지금도 생사의 문제라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기술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중립적이지도 않다." 기술사학자들이 크란츠버그 1법칙이라고 부르며 곧잘 인용하는 명제이다.
이 말은 부엌에서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도구는 중립적이지 않다. 도구는 진화하는 사회적 맥락에 발맞추어 변한다.
절구는 주인의 쾌락을 위해서 몇 시간씩 재료를 찧어 철저히 섞었던 고대 로마의 노예에게,
그리고 순전히 재미로 페스토를 만드는 내게 전혀 다른 물건이다.
우리가 한 시점에 소유한 도구들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반드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고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머니가 감당하고 사회가 인정하는 도구만 가질 수 있다.
칼
종종 클리버라고 불리는....중국의 칼은....인류학자 E.N. 앤더슨에 따르면,
중국부엌칼은 최소의 비용과 노력으로 최대의 가치를 끌어내는...환경의 산물이다.
중국 부엌칼은 무엇보다도 검소한 농민의 문화의 산물이었다.
...재료를 작게 썰면 이동식 화로와 같은 불 위에서 더 빨리 익었다.
...부족한 연료를 최대한 활용하게끔하는 절약의 도구였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중국 부엌칼에도 교환관계가 성립한다.
요리시간을 줄여 전광석화처럼 볶으려면 재료 준비에 적잖은 노력과 가술을 들여야 한다.
...중국 요리는 칼 덕분에 서로 다른 계층 사이에 통일성을 유지했다.
중국에서 가난한 요리사는 부자요리사에 부해 채소와 고기가 훨씬 더 부족하겠지만
무엇이든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같다.
재료를 다루는 기술이야말로 중국 음식을 중국 음식으로 만드는 특징이다.
불
그런데 영국인들이 roast beef를 편애한 것은...자원의 문제이기도 했다....다른 나라와 달리 영국에 땔 나무가 풍성했던 탓도 있었다.
...중세부터 19세기까지 런던은 파리보다 연료가 훨씬 더 풍부했고, 그 덕분에 식량도 더 풍성하게 공급받았다...
영국에서 흑사병이 휩쓴 뒤에는 땔나무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지만, 값싼 석탄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로스팅 용 불길을 활활 지펴주었다.
......
중세 영국의 부잣집 부엌에서는...turnspit...이라고 불렸던...로스팅용 꼬챙이를 돌리는 소년..
전기작가 존 오브리의 글에는 "옛날에는 가난한 소년들이 꼬챙이를 돌리며 국물받이를 핥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스코틀랜드 고산지대 출신의 존 맥도널드는 이름난 집사로서 평생 하인으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회고록으로 남겼다.
고아인 맥도널드가 처음 맡았던 일은 아기요람 흔들기였는데, 그 일에 질리자 어느 신사의 집에 꼬챙이 돌리는 소년으로 취직했다고 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다섯살이었다....
1576년에 출간된 개에 관한 책을 보면 "turnspit"을 부엌에서 일하는 개라고 정의해놓았다.
사람들은 교배를 통하여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를 일부러 얻었다...
우리곁에는 이제 턴스핏용 개 품종이없다. 사람들이 문득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그런 관행이 사라진 것이라면 오죽 좋겠느냐만,
역사는 대개 그렇게 나아가지 않는다. ....턴스핏의 시대를 끝낸 것은 자비심이 아니라 기계화였다.
영국에서 '레밍턴'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최초의 브랜드에 속했고, 곧 폐쇄형 레인지를 통칭하는 일반명사로 통하게 되었다....
폐쇄형 레인지의 갑작스런인기는 단순히 유행에 따른 현상만은 아니었다. 산업혁명의 재료인 석탄과 철이 이끈 현상이기도 했다.
요리용 스토브가 갑자기 유행한 것은 사람들이 럼퍼드의 글을 일고 개방형 화덕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에 값싼 무쇠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
전자레인지가 우리를 '사회성 발달 이전 단계'로 되돌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기야 전자 레인지를 보고 있자면우리가 불을 발견한 일은 없었던 것만 같다.
인류는 역사 내내 불을 가두고 통제하려고 애썼다. 불은 사회적 생활의 구심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자 레인지로 불 없이 요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가 불을 그리워하고 생활에서 불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는 징후도 간간이 보인다.
...전자레인지가 옛 화덕처럼 가정의 구심점이 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불가에 모인 수렵채집인들처럼
전자레인지 앞에 옹그린 채 경이로운 표정으로 잠자코 팝콘이 튀겨지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계량
어느 집단이든 실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 예술적 요리사는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측정한다.
숫자를 지키는 요리사는 스스로 자랑하는 것보다 훨씬 덜 과학적이다. 숫자를 지키는 요리는 과학적 기법에 대한 미묘한 오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
1392년 출간된 파리의 메나지에 실린 팬케이크 레시피는 ...'가장 고운 밀가루'를 섞어 '한 두 사람이 지칠 만큼 충분히' 젓는다....
'한 두 사람'이라는 표현은 놀랍도록 태연자약한 느낌이다. 그 표현은 수많은 하인들이 흡사 수많은 부엌 기구처럼 나란히 대기한 부엌을 환기시킨다.
...요즘 우리는 'refined'라는 말은 '부유하거나' '세련되었다'는 뜻으로 쓰지만 원래 그 단어는 음식을 가공한 정도를 뜻했다.
정제된 음식은 세련된 사람들이 먹는 것이었다.
그런 음식이 하인들에게 잉여의 노동을 부여하는 것 외에 별 매력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평가일 것이다.
갈기
그러나 우리는 갈고 빻는 기술을 살펴볼 때, 산업사회 이전 노동의 문제와 그 패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자들은 정제한 음식에 많은 노동이 수반되는 것을 알면서도-지쳐 떨어지는 사람의 수로 판단한다- 감내하고 선호했다기 보다,
오히려 많은 노동이 수반되기 때문에 선호했다.
...
기나긴 세월 동안 하인들과 노예들 - 작은 집안에서는 아내와 딸들 - 은 혁신이 거의 없는 똑깥은 절구와 체에 얽매여 있었다.
부엌기술의 정체는 사람들이 자기 일이 아닐 때는 노동력 절감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가혹한 진실을 드러낸다.
......
푸드프로세서 (기계)는 나를 포함한 열성적인 중산층 애호가들에게 크나큰 해방감을 안긴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푸드프로세서가 모든 노동을 덜어주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망상이다.
...자기 대신 수고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던 데에 비해 우리의 하인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뿐이다.
포크
부엌용품을 더 많이 갖춘다고 해서 반드시 삶이 더 안락해지는 것은 아니다.
요리와 식사라는 어수선한 활동을 담당하는 반짝거리는 도구를 자꾸 더 고안할 때의 문제점은
이 도구는 꼭 이렇게 쓰라고 명시하는 사회적 관습이 함께 딸려온다는 점이다.
그 방식이 상식과 배치되더라도 관습이니까 지켜야 한다.
...
나이프와 포크는 로스트 비프를 썰 때는 편하지만 콩이나 쌀을 먹을 때는 거추장스럽다.
그런 음식은 숟가락이 더 낫다.
서양인이 나이프와 포크로 먹으면서 느끼는 은근한 자만심이 늘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대단히 호들갑스러운 방식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익숙한 기술의 효율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서양의 식사예절은 젓가락이 한 손으로 너끈히 해내는 일을 두 손으로, 그것도 덜 원활하게 하도록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얼음
..우리가 개인적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기술변화의 결과일 때가 많다.
부엌
중세 유럽 오두막은 보통 실내에 고정된 화덕이 있었다. 그러나 요리용 불을 모신 방은 또한 거실이자 침실이자 화장실이었다. ...
가난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세계의 수백만 명이 그렇게 살고 있다.
......
20세기 초 등장한 또다른 합리적 주방은 빈 예술공업학교의 첫 여성 건축학도였던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설계한 프랑크푸르트 주방이었다.
...1940년부터 이상적 주방은 여성들의 눈앞에 대롱거리는 당근이 되었다.
그것은 고된 일상에 대한 보상, 혹은 무급의 '주부'란 얼마나 행복할 삶이냐고 속삭이는 속임수였다. ...
그런 부엌의 목표는 노동을 절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노동하고 있음을 잊게 만드는 것이었다.
......
이 식사에 들어간 재료가 하나 더 있다. 애초에 요리를 하고자 하는충동이다.
부엌은 우리가 요리할 때에만 생기를 띈다.
기술의 진정한 추진력은 것을 사용하려는 욕망이다.
부엌은 근사한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내게 알려준 어머니가 계시지 않었더라면,
오늘의 오믈렛 점심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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