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헤겔, 법철학 서문 - 인식이 마련해 주는 것은 바로 현실과의 더욱 따뜻한 평화이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9. 12. 9. 14:13

헤겔, 법철학 강요 해설 <서문>, 백훈승 지음, 서광사


TW 7.27 f./[법철학], 53


어슬픈 철학은 신으로부터 멀어지지만

- 물론 인식작용을 진리의 접근으로 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슬픈 것이다-

진정한 철학은 신에게로 나아간다는 말이 유명한 말이 되어버린 것처럼

이와 동일한 내용이 국가에도 적용된다.

이성이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아서

내뱉어지는 그러한 접근으로 만족하지 못하듯이,

물론 이 시간성 속에서는 나쁘거나 혹은 기껏해야 평범하게 일이 되어 가지만,

바로 이 시간성 속에서는 더 나은 것을 가질 수 없어서

단지 현실과의 평화만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인하는

냉혹한 절망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식이 마련해주는 것은 바로

현실과의 더욱 따뜻한 평화다.


TW 7.27 f./[법철학], 53f.


세계가 어떠해야만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대하여 한마디 더 하자면,

어쨌던 철학은 이에 대해서 항상 너무 늦게 가르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사유로서의 철학은

현실의 자기형성과정을 끝낸 후에야 비로소 시간 속에 나타난다.

개념이 가르쳐주는 이 사실을

역사도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그것은, 현실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이상적인 것이 실재하는 것에 맞서서 나타나서

실재하는 세계의 실체를 포착하여

그것을 지적인 왕국의 형태로 구축한다는 사실이다.

철학이 자기의 잿빛을 또 다시 잿빛으로 칠할 때,

생의 모습은 늙어버리게 되어,

회색에 회색칠을 한다 할지라도

생의 모습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될 뿐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