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167

밀포드 사운드

2016년. 뉴질랜드 남섬의 남쪽. 단어 Sound는 피요르드 fjord 지형을 일컫는 고대 영어와 노르웨이어 sund에 기원을 두고 있는 말이다. '소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보통은 빙하로 깎인 하구 지형을 말하는데. Sound자체는 좁은 물길, 특히 두 산덩어리 사이를 지나는 물길을 일컫는다. 밀포드 사운드는 유럽의 바닷표범 포경선장인 John Grono가 웨일즈 지방에 있던 유사한 지형 Milford Haven을 따라서 지은 이름이라고 알려져있다. 이걸 뒤늦게 포스팅하는 까닭은 여기에 트레킹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일부 구간만을 걷거나 하였는데. 이제 제대로 걸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해서이다.

시코쿠 오헨로길 24 - 시코쿠의 국보 건축물

시코쿠에 있는 일본의 국보 목조 건축은 모두 6개소이고, 오헨로길에서 만날 수 있는 일본의 국보 건축물은 4개소이다. 추가하여 헨로길에서 떨어진 사찰 1개소와 신사 1개소가 있다. 건축시기는 헤이안(平安) 시대 말~가마쿠라(鎌倉) 막부시대 초기의 사찰건축으로, 헤이안 시대 말기에 유행했던 아미타 여래와 오랜 신앙인 약사 여래를 모신 곳들이다. * 44번 절집 : 大宝寺・本堂 - 에히메 현 마쓰야마 시 가마쿠라 시대 전기의 건립으로 추정되며. 헤이안 시대 말기의 말법 사상을 배경으로, 정토 신앙의 융성에 따른 아미타 여래를 모신 본당이다. 개인적으로는 45번 절집의 본당이 구조적으로 흥미로왔다. (45번 절집은 근세 1927년의 건축물이긴하다.) * 51번 절집 : 石手寺・二王門 - 에히메 현 마쓰야마 시..

시코쿠 오헨로길 23 - 아! 태평양, 너른 바다

누군가에게는 도전과 극복의 바다일런지 모르겠지만, 또 어떨 때는 인간의 무력함을 실감케 하는 지진 너울의 바다일 수도 있겠지만, 일상을 걷는 길손에게 바다는 그저 푸른 아름다움이다. 지구별이 선사하는. 시코쿠의 남녘을 걷는 또 다른 행복이 여기에 있다. 바다는 늘 제자리에서 다른 시간대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코쿠 오헨로길 22 - 번외(番外)

88개의 번호도 20개의 별격 번호도 아닌 번외 사찰들이 있다. 가람의 규모를 갖지 못하고 홑집으로 된 곳들이 많다. 마을의 대사당이 그러하고 또 다른 대사님이거나 지장보살을 모신 단촐한 절집이 그러하다. 그러한 작은 절집을 참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구나 이리 번외 절집이라고 밝히고 있는 다음에야. 삼배를 올리고, 밥주발같은 좌종을 치고, 반야심경을 염불할 일이다. 커다란 목탁까지 있음에랴.

시코쿠 오헨로길 21 - 대사당(大師堂)

시코쿠 순례길에 88개 사찰, 혹은 20개의 번외 사찰에만 관심을 가졌지, 대사당 (다이시도)은 그러려니 했다. 이런 절집은 대사(大師)의 칭호를 받은 큰 스님을 모시는 곳으로, 때로는 이름도 없이 그냥 나무아미타불의 붉은 깃발만이 표식인 곳이 많다. 마을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보이며 때로 헨로들에게 길손의 잠자리나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깃발이 보이면 신사가 아니니, 법당을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코쿠 오헨로길 19 - 시코쿠 헨로길의 경쟁력

*그곳을 살고 있는 분들의 생활과는 별개로 순례길에 나선 헨로상들에게 있어 시코쿠는 경쟁력을 가진 곳이다. 2019년의 3월의 1차 순례에 이어 2023년 3월 다시 시코쿠를 찾았다. 지난 순례길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예전의 처음 그 감동은 조금 식어버린 느낌도 있긴 하다. 이제 그 길의 경쟁력을 짚어본다. 1. 시코쿠의 풍광의 형성 - 자연 풍광의 형성은 대부분 자연환경의 기여에 의한 것일 터이다. 일본의 경우는 해양성 기후조건에 따른 풍부한 강우량과 높은 산과 짧은 강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의 차이를 기준한다면.) 우리와 다른 난방구조 (다다미방과 같은)와 이로 인한 땔감의 차이에 힘입어 삼림은 무성하고 이는 다시 풍부한 지하수와 높은 하천 수위 (하상계수)..

시코쿠 오헨로길 18 - 별격 사찰 20개소

시코쿠 오헨로 88개소의 사찰은 홍법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에도시대부터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부분은 석가여래나 대일여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약사보살을 본존불로 모신 사찰들이다. 이러한 사찰과 별개로 20개소의 사찰을 별격(別格) 으로 (장사속이라 불러도 어쩔 수 없다지만 1968년에) 구성하여 번외 영장으로 부르고 있다. 홍법대사를 본존(?)으로 모신 곳도 더러 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긴 하다만, 아무나 부처라고 주장한다면 흔히들 이단으로 칭한다. 별격(別格)이라고는 하지만 格이란 것이 참배객의 수준도 아닐 뿐더러 더구나 사찰 절집의 격은 아니다. 단지 때때로 오헨로 길에서 조금 멀어져 있을 뿐이다.) 20개소는 88개소와 합쳐 108이란 숫자를 만들고, 10..

쌍봉사 삼층전과 철감선사탑의 가릉빈가

몇 남지 않은 목조탑이었다는데, 8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다시 지어지고, 지금은 보물의 지위를 잃었다.예전의 8작 지붕이 4모의 모둠 지붕으로 탑의 형태를 얻어 보륜을 얹었다 한들아름다운 한국 목조의 한 시절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그림 한 장 도면 한 장 남겨두지 않은 대목장들, 그것이 쟁이들의 한계 아닌 한계일 것이다.(그러고도 모든 그림이 가슴과 머릿속에 있다고 위안을 삼았던 사람들.  천대받았던 직업의 한계였을라나.) 지식을 공유하지 않았거나 혹은 못하였거나 간에. 지장전이다. 목조 시왕상 전체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철감선사탑을 찾아간다. 당우 뒤편으로 사사대 길을 지나서 언덕배기에 놓여있다.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준다.지붕의 섬세함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돌쟁이의 솜씨..

운주사에서

운주사는 봄날이었다. 2월 초순의 날에도. 애들이 꼬맹이였을 때 온 적이 있었지만. 꽤차 오랜만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선화로 그려진 미륵보살을 찾긴 쉽지 않다. 비례가 조금 허트러진 듯 하지만 층지붕의 날렵함만은 잊지 않았다. 탑신에는 떡살 무늬같은 꽃그림이 앉았다. 4장의 꽃잎이라, 돌밭에 핀 산도라지이려나?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 했던가 (天圓地方), 혹은 사람의 일은 어딘가 모난 곳이 있다지만, 하늘의 이치는 원만하게 굴러간다는 뜻이련가? 미륵의 집은 저리 생겼다. (인근 보성 대원사의 미륵집도 저리 생겼으나 보물에서는 빠졌다.) 나중에 오시게 될 때에도. 부부로 온다는 발상이 새롭다. 와서 부부가 될 인연인 것일지도.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세상의 이치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