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167

방글라데시 단상 (12) - 전봇대를 세우는 방법

이제는 전보電報를 보내지도 전신電信을 보내지도 않는 시절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이름은 전봇대라 불린다. 궁금하지 아니한가, 저 놈을 어떻게 세울까는? 높이가 다른 대나무 다릿발을 조금씩 걸쳐 올리며 전주는 세워진다. 한쪽에 굴착기가 있긴 하지만 저건 가까이에 공사장이 있어 가능한 것이겠고, 반대편에서도 사람 여럿이 줄을 당겨가며 전주를 세운다. 당기는 끈의 위치는 역학적인 선택에 의해 길이의 1/3 지점이다. 역시나 바닥에서의 1/3 지점에 짧은 대나무 다릿발이 있다. 이런 장면에서 역학을 읽는다는 것은 쟁이의 한계이다.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그대는 경제관념이 있는 것이겠고.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하는 인간의 노력은 경이롭다. 사람이 가장 싼 나라에서의 풍경이다.

방글라데시 단상 (11) -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중학교 때쯤이던가? 학생중앙 부록으로 딸려온 세계의 명화 명대사집에 실려 있던 내용이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 are sorry. 잘못된 오역의 사례이기도 하다. 사랑은 '네 잘못이야'라고 말하지 않는 것' 쯤이 바른 번역일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상대에다 대고 "You are sorry."라고 말하는 걸 나는 본 적이 있다. 방글라데시의 경험이 많은? 한 사람에게 나는 방글라데시인들이 하는 영어의 '시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벵골어에 시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게 해외 경험이 없느냐고 묻는다. 영어가 짧은 것은 아닌지, 라고 묻는 것이다. 글쎄다. 짧다면 짧다. 그러나 내가 이런 '기대하는' 시제를 잘못 알아듣는 이유는 아..

방글라데시 단상 (10) - 방글라데시에서 철을 얻는 방법 2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일이 가끔은 이러저러한 변수들로 인하여 당연하지 않아 지는 곳이 있다. 방글라데시가 그렇다. 2년 넘게 기다렸던 사업부지 내부의 예전 초등학교?를 철거하는 작업이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창문에 드리웠던 창살이거나 방풍막은 당연히 눈에 보이는 것이겠지만, 옥상의 콘크리트 내부에 들어갔던 철근도 포함된다. 지금의 저 햄머질 장면은 콘크리트를 떨어내고 옥상의 철근을 노출시키는 작업이다. 뒤편의 건물 옥상은 이미 떨어내었다. 벽돌도 허투로 버리지 않는다. 어딘가 다른 곳에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방글라데시에는 약 10,000개의 가마에서 230억 개의 벽돌을 구워내고 있다고 한다. 대기오염의 한 주범일 것이다.) 그대에게 시간이 허락한다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두..

시코쿠 오헨로길 16 - 일본 법당의 공간 구성

우리네 법당은 열려있다. 딱히 큰스님과 친분이 없더라도 옆문짝 하나 밀고 들어서면 수미단 위에 부처님이 앉아계시고 우리는 늘상 보단에 우리의 고민들을 하나 둘 얹어 놓고 나온다. 가벼워진다. 그리고는 밝다. 법당의 내부가. 그냥 한 채의 살림집같은 절집이다. (최근 한 큰 스님을 뵈니, 일본 법당이 오히려 전통적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전의 모습과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고. 내전의 단이 높고 승려만이 접근 가능한 구조를 이름이다.) 열리거나 닫힌 게 어느 쪽이 더 좋다거나 하려는 게 아니다. 다름을 얘기한다. 시코쿠에서 만나는 일본의 절집과 한국 절집과의 문화적인 차이를. (나의 이런 분석은 엄밀한 과학도 학문적 접근도 아닌, 그저 나의 느낌이다.) 시코쿠 순례길에 만나는 일본의 절집은 '집'이 아니다. 집 ..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 11. (외전) 자영업자의 비율

산티아고나 일본의 순례길에서 느낀 점 하나는 우리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자영업자가 흔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길이 시골길인 탓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유동인구가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게의 숫자는 한 마을이면 하나 둘 정도였다. OECD 통계에 의하면 자영업자의 구성비는 2020년 기준 한국 25%, 일본 10%, 스페인 16%이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자영업자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방글라데시의 경우 자영업자 비율 - 아마도 농업인구를 제외하고 - 59%로 보고되었다. 2020년 기준) 우리의 경우 노후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상대적으로 오래 살게 되는, 축복인지 재앙인지 모를, 구조하에서 연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에 ..

방글라데시 Kuakata 절집구경 (3) - Misri para 절집

구글 길찾기로 절집을 찾아 나섰다가는 낭패일 겁니다. 현지인에게 물어물어 찾아갑니다. 인터넷의 관광 설명서에는 그냥 지명만 나와있고, 구체적인 접근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Kuakata 원점으로부터의 5km 정도이고 릭샤 - 세발 오토바이-를 타라고만 합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길은 포장 비포장으로 우기라면 엄두도 못낼 상황이었습니다. 100년 되었다는 반얀나무입니다. 정확한 수령을 누가 알겠습니까만. 얼추 그리되어 보입니다. 뒤쪽의 둥치가 원 둥치이고, 앞쪽의 둥치는 가지에서 내려온 뿌리같은 것입니다. 영어로는 aerial prop root (받침 뿌리) 라는 것입니다. 절집에서 한 3분 거리입니다. 차를 대기에 편하여 이쪽부터 보고 걸어들어갑니다. 쇠꼴을 먹이는 방법입니다. 살아있는 나..

방글라데시 단상 9 - 아름다움이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위험한지, 여기 방글라데시의 연못에 핀 부레옥잠을 보면 알 수 있다. 길손은 늘 눈의 아름다움으로 풍광을 가져오지만, 현실에서의 그것은 연못을 생태계를 마비시키는 잡초에 불과하다. 한국에서야 겨울철이 있고 이로 하여 1년생 풀이라지만, 여기서는 다년생의 무한 증식이다. 물 속의 질산염을 제거하는 생태계 보전 식물이 될 수도 있다지만, 여기서는 그저 수중 광합성을 방해하거나 산소를 결핍시키는 잡초이다. 지금은 나아졌다지만 수운이 발달한 방글라데시에서 선박의 항행 역시 방해하는 잡초로 알려져있다. (결국 1936년에는 부레옥잠법으로 모든 개인연못의 부레옥잠 근절을 법제화한다. 이후 부레옥잠의 제거까지는 10여년이 걸린다. ) 일부는 베어져 비료나 사료로 사용된다는 얘..

방글라데시 단상 8 - Kuakata 해변에서 새해맞이

마침 1월 1일이 휴무일과 겹쳐 짬을 낼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2대 해변이라는 쿠아카타 해변, 자기들 말로는 3km 폭에 16km길이라는데....믿어야지 믿기진 않지만. Kua는 우물이란 뜻이고, Kata는 땅을 판다는 뜻이다. Kuakata는 다른 이름으로 Shagor Konna ( the Daughter of Sea ) 바다의 따님으로 불리운다. 여기서는 일몰과 일출을 동일 수평선의 동과 서에서 볼 수 있으니 어쩌면 복 받은 땅일 것이다. 갯가 마을이다. 생선을 꾸덕꾸덕 말리는 풍광이 이채롭다. 지는 해를 본다. 그래도 역시 일몰은 야자수지. 어딘들 떨어지는 태양이 없겠냐만, 야자수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은 쉽지 않다. 강아지 한 마리, 고깃배 한 척이면 지는 해라도 좋으리. 아듀 2021! 새벽 5..

방글라데시 단상 7 - 택배 이야기, 좌판과 현찰 박치기

주소가 있다고는 하지만 자세치 않다. 다카엔 분명 주소가 있었지만 여기 남녁의 주소는 한국식으로는 OO 부락 쯤이다. 있긴 하나 상세주소는 번지수가 없는 불명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인근 항구 (아마도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는 모양이다)에 와있다고 전화가 왕왕 오곤했다. 주소라고는 그냥 인근의 큰 관공서 대문을 먼저 적고, 다시 그 관공서 대문에서 보이는 은행 건물 (간판이 있다)을 들먹인다. (택배직원의 연락이 와야 하니 전화번호는 그래서 필수이다.) 어려운 영어 이름 (명색이 복합건물이라는)이 건물에 있긴하지만 그것은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기에 외부인(택배기사)에게는 그냥 1층에 은행이 있는 건물이라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택배기사는 근처에 배송할 물품을 늘어놓아 좌판처럼 깔아놓고는 물건을 받을 사..

좋은 사진을 위한 10가지 생각

늘상 카메라를 가져다 대어 보지만 좋은 그림을 얻지 못한다. 느낌이 좋은 장면에서의 거친 사진은 사진 뿐만 아니라 장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1. 사진, 빛으로 그린 그림 늘 모호한 빛을 담아왔다. 외려 선명한 대비가 뚜렷하도록 좀더 많은 빛을 담는 노력이 부족했지 싶다. 사진은 빛과 그림자의 앙상블이 아니던가. 2. 계절과 하루의 시각이 보이는 좋은 풍경은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사람이 있고,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보여진다면, 우리는 더 많은 생각을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이 보이고, 더하여 사진을 찍은 하루 중의 시각이 보이는 사진을 찍고싶다. 3. 구도, 의도된 의외성 주제가 조금 비껴진 장면은 낯설게 하기 같은 것이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만드는. 그러한 의외성이 탄탄한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