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핑이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건물은 석탄 창고였는지 구공탄 공장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벽면에는 검정이 훌훌하여 동무들과 뛰놀다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 학교는 내 기억이 맞다면 바다가 보이는 교실의 전신이었다.
정일근 시인의 시작품은 산중턱에 자리잡은, 새로지은 진해 남중학교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나는 그 커다랗게 낡아버린 창고건물에 가려진, 버려진 교사에서 초등학교 한 시절을 보냈다.
경화초등학교 2, 3학년 쯤으로 기억되지만,
우리가 무슨 이유로 그 학교에서 몇 달을 보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때를 함께 했던 동무들 생각, 오늘은 유가 다르다.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고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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