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다가 보이지 않았던 교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2. 8. 10. 04:26

루핑이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건물은 석탄 창고였는지 구공탄 공장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벽면에는 검정이 훌훌하여 동무들과 뛰놀다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 학교는 내 기억이 맞다면 바다가 보이는 교실의 전신이었다.

정일근 시인의 시작품은 산중턱에 자리잡은, 새로지은 진해 남중학교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나는 그 커다랗게 낡아버린 창고건물에 가려진, 버려진 교사에서 초등학교 한 시절을 보냈다.

경화초등학교 2, 3학년 쯤으로 기억되지만,

우리가 무슨 이유로 그 학교에서 몇 달을 보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때를 함께 했던 동무들 생각, 오늘은 유가 다르다.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고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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