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167

시코쿠 오헨로길 3 - 일본의 절집 예절

어머니는 절집 마당에 들어서면 늘 손을 씻으셨다. 우리네 절집의 초입에는 으레히 약수물이 졸졸거리는 절구통이거나 물확이 놓여있기 마련이어서, 이래저래 절집을 들어서면 손을 씻기 마련이었다. 목을 축이는 것은 덤이고. 그런 풍경은 일본의 절집에서도 보게된다. 우리와 달리 일주문이 있는 경우는 드물고, 또 사천왕을 두루 모신 곳도 드물다. 인왕문에는 두 분의 천왕을 모시고 커다란 짚신짝을 걸어두었다. 아마도 홍법대사의 순례길 상징이지 싶다. 산문을 올라 이제 경내로 들어서면 우선 정수(淨水)에 손을 씻는다. 그 물바가지나 또 걸려있는 수건이 늘상 깨끗한 상태가 아닐지라도. 대부분 졸졸거리는 상태로 마실 수 있기는 하겠지만 입을 헹구어내는 정도일 것이다. 연후에 종루에 가서 타종을 한다. 불자가 왔음을 알리는..

시코쿠 오헨로길 2 - 편의점에 기대고 있는 길

오헨로 길에서, 특히나 배낭여행으로 텐트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편의점의 혜택을 빼놓고는 시코쿠 순례를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오헨로 길에 연하여 편의점이 있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또 일부 구간에서 편의점을 찾을 수 없는 곳도 더러 있긴 하지만. 시코쿠의 편의점은 주요 간선도로에 배치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넓은 주차장을 우선 확보하고 있고 (오헨로상과는 큰 관계가 없긴하다.). 무엇보다 화장실 사용이 자유롭다. 화장실은 대부분 비데를 갖추고 있고 깨끗함을 넘어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 (일본의 공공 화장실 시설도 훌륭하다. 화장지는 충분히 비치되어 있고,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 쓰레기의 처리도 가능하다. 그 편의점에서 먹고 나온 쓰레기 뿐 아니라 배낭 구석 구석 박아 두었던 쓰레기도 처리가 ..

시코쿠 오헨로길 1 - 친절한 마음이 봄볕보다 따스했던 길

여든 여덟 개의 절집이 오헨로 길을 만들었다는 것은 결과론적이다. 홍법스님의 설법 여정이 오헨로 길이 되었다는 것 또한 그렇다. 정작으로 오헨로 길은, 그 길에 연하여 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친절함과 인정의 길이기에. 햇빛이 쨍한 오후의 도로변을 걷노라면, 트럭을 세우고 바나나 두 쪽을 접대해주신 어르신, 또 다른 길에서 차도를 건너 오셔서 딸기를 건네주신 어르신, 이름 없는 절집을 들렀을 때, 과자 한 봉지, 사탕 몇 알을 접대로 주신 아주머님들, 비를 맞고 산을 내려왔을 때, 준비된 음식이 없는 우리를 위해 편의점까지 차를 태워 도시락을 챙겨주신 어르신, 영업이 끝난 우동집 앞에서 텐트를 펼치고 저녁 걱정을 하던 차에 따스한 주먹밥을 가져다 주신 우동집 아주머님, 물집 잡힌 발바닥을 건사하느라 슈퍼 ..

가보고 싶은 곳 [영드] Doc. Martin의 그곳.....파도가 물러선 자리에선 고단한 삶이 피어 오른다

영국의 한 곳, Port Issac에서 촬영된 이 시리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사회성 없는, 그러나 자신의 일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의사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허나,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구절이 헛소리가 아님을 나는 깨닫는다. (이런 속담에 숨어있는 조선의 현실은 서글퍼다. 상하수도가 정비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인프라와 자본을 요구한다. 사실이지 조선은 그러한 인프라의 개념도 없었거니와 국가? 라기보다는 전근대적 노예제 부족연합이었던 나라의 곳간은 텅 빌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명색이 항만 엔지니어라고, 나는 그 방파제가 늘 궁금하였다. 어느 한 편에서인가 내가 원하던 장면, 방파제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방파제의 단면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검..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 10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헤밍웨이를 좇아서....

미제라면 똥도 좋다던 것은 외할머니 말씀이셨다. 황동쟁이라면 스웨덴 이리라. 프리머스, 옵티무스, 라디우스....빠나 빠나....여배우인들 스웨덴이라면 더욱이지 않으랴.잉그리드 버그만이 그렇다. 게리쿠퍼와 주연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사실이지 이 영화에서는 조금 중성적으로 나온다. 거지컷 때문이리라. 햅번이나 가르보나 켈리를 좋아한 시절도 있었지만. 그레타 가르보 역시 스웨덴 출신이긴 하다.) 뽀뽀할 때 코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내숭쟁이 여자와 혼자 남아 잘난 체하며 죽어가는 내일을 향해 쏴라는 식의 서부활극의 사내가 만드는 영화....나는 오히려 홍상수식의 찌질함이 그리운 것인지 모른다. For Whom The Bell Tolls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No man i..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근처"의 추억 - 동굴 숙소의 밤

얄궂은 드라마 때문에 예전 사진을 찾아본다. 그것이 추억일진대. 스페인 남부 여행은 가외의 길 같은 것이었다.해서 나의 추억은 알함브라 궁전이 아니라 동굴숙소 Cave에서 시작된다.이름을 알 수 없는 언덕배기를 한참을 걸어 올라가 도착한 동굴-비슷한-숙소알바이신-샤크라몬테였던가? 동굴숙소같은 느낌이긴하나 엄밀한 동굴숙소 Cave는 아니다. 이 숙소의 전망에서 나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았다.사진 뒤쪽으로 보이는 살짝 붉은 궁전.....당일 예약이 되지 않아 궁전 변두리만 걸었다. 딱히 내부를 본들 무슨 추억이 있을까만.... 기타 선율에 실려오는 쇄잔한 왕조의 비극이 귓가에 맴돌지도....Cave에서 바라보는 밤의 알함브라 궁전. 그냥 던져둔 스쿠터도 색을 얻어 예술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9 칼 이야기

캠핑장에서도 그렇지만, 좋은 칼은 좋은 친구 같은 것이다.날이 날카롭게 서 있되 결코 주인을 찌르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날붙이의 미덕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헬레나 오피넬 칼은 장거리 순례길에서 추천할 만한 것이 아니된다.다시 그 길을 가게 된다면, 빅토리녹스의 톱니과도를 챙길 것 같다.우선 칼날의 길이를 반으로 자르고, 또 손잡이도 반으로 잘라, 그놈을 가져가고 싶다.과일도 깎고 고기도 썰고 만년구짜이리라. 손을 베일 일이 없으니 그 또한 둏고 둏을 것이다.원래의 목적대로 빵칼로도 소용에 닿고....언제 날 잡아서 저 과도를 반으로 잘라 좋은 칼집을 맹글어두어야겠다. 딱 저만한 칼이 있기는 하다.오피넬 앙팡 어린이용이 그렇다.손잡이가 조금 유치한 칼라라서 그렇긴 하지만,베일 염려도 덜고 막..

원덕리 돌미륵

백양사 가는 길에 길안내판에서 언뜻 본 원덕리 돌미륵,금산사 미륵전도 본 터라 미륵 한 분 더 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내친 걸음에 원덕리를 찾아갑니다.좁은 농로 터널도 지나고, 경운기 소로를 따라 올라가니 원덕사라는 절집이 나옵니다.아무리 찾아도 돌미륵님은 보이질 않습니다.행여 놓쳤나 싶어 아래길을 훑고 웃길도 훑고하여도 보이지 않아,절집을 두드려 스님께 여쭙니다. 당우로 가려진, 사실 대웅전 유리창으로는 보입니다만, 뒷편에 돌미륵님 계십니다.철길 옆 귀퉁이에 멀거니 서 계십니다.저 시원시원한 눈망울로 세상을 굽어 보시고,우리더러 깨우친 몸으로 나은 세상을 향해 움직이라 말씀하는 듯 합니다.

금산사 적멸보궁 방등계단에 서면

금산사라면 당연히 미륵전을 봅니다. 외3층 내1층의 - 목조로 3층 짓기가 쉽지 않을 터이니 - 구조를 갖고 있는 탑이라고 보아야 하나요.여튼 금산사 마당에 흩어져 있는 보물 몇 점 속에서 국보의 명찰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절집의 가장 아름다운 곳은 제게는 방등계단이었습니다.방등方等이란 말의 뜻을 오늘날의 민주주의 어쩌고 부처님의 평등 어쩌고 하는 것이 넌센스일지 모릅니다만,큰 수레의 본래 뜻과는 어느 정도 맞을 것입니다.적멸은 저 우주 속으로 멀어져간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저 우주에서 우리 속으로 들어온 무엇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