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167

양평 상원사 동종을 보러가는 길

한 때 국보였다가 지금은 무슨 천덕구러기처럼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위에 놓여 있는 동종,상원사의 동종을 보러 갑니다.문화재가 되면 접촉.....손만짐이 허용되지 않기에,진품으로 판명나기 전에 촉감이나 궁금했던 것을 세밀히 볼 양으로 길을 나섰습니다.4대 적멸보궁인지 5대 적멸보궁인지에 들어가는 영월의 법흥사를 들러,여주의 고달사지를 지나서,양평의 상원사로 갑니다. 절집의 첫인상은 콘크리트 기숙사로 막혀있는 기와집 같았습니다.그러나 절집의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여러번 난리와 전쟁통에 불이나서 최근에 지은 절집치고는 참으로 정갈하고 세련되었더랬습니다.눈밝고 생각깊은 주지와 신도들의 아름다운 합창이겠지요, 이리 아름다운 절집을 지었음은. 당초 보고픈 동종보다도 절집의 간결한 아름다움에 먼지 눈이 갔습니다.동종은..

당진 면천 영탑사 - 금동 비로자나 삼존불

면천 영탑사를 찾습니다. 남도에 태풍이 온다는데 바람은 잦아들어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절집의 고요가 있어 더욱 좋은 시간인 듯 합니다. 우선 영탑부터 찾아봅니다.절집 마당에 5층으로 있던 탑을 탑신만 유리광전 뒷 석산의 바웃돌 위에 2층을 더하여 7층으로 앉힌 것이라고 합니다.제가 보기에는 어느 눈 밝은 스님께서 반야용선의 탑신으로 우뚝하니 옮겨두신 듯 합니다. 영탑의 바로 아래에는 유리광전이 있습니다.약사불을 모신 당우입니다. 애초에 저 약사마애불이 먼저 조성되고 뒤에 당우로 덮어둔 형상입니다. 면천 沔川의 면자는 물찰랑일 면이라고 스님께서는 설명하십니다. 실제로는 물이 부족한 지역이라 그런 글자로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합니다.결국은 중생의 삶이 고달프고 병마에 시달리는 지역이라, 약사불을 조성했..

진해 웅동 성흥사

'선지자가 고향을 떠나서 환영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라고 예수가 이야기했다고 하지만, 고향 인근의 절집 또한 그러하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의 기억을 뒤로하고 추석을 앞두고 찾은 절집은 고요가 내려앉았다. 본전도 본전이지만 나한전의 500 나한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차분히 웃고 있었다. 불모산 자락이고 하지만 오히려 김해 쪽의 굴암산 자락이 더 가찹고, 굴암산 서편의 불모산에는 범어사의 말사인 곰절 성주사가 있다. 외려 진해 웅동 쪽에 있는 성흥사는 쌍계사의 말사로 절집의 공간적 세력 구조가 오묘한 구석이 있다. 늘상 그렇지만 절집 마당의 배롱나무는 백일 붉은 꽃을 피운다. 하얀 수피가 스님 머리의 그것 마냥 맨드드러 하다. 운판과 쇠북이 걸린 종루는 날듯이 기지개를 켠다. 쭉쭉 뻗은 편백이 함께 씩씩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8 배낭 이야기

참 고민스런 물건이다. 배낭이란. 무게를 줄여야 할 형국에 그 자체의 무게부터 문제가 되는.절집의 말씀따나,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야 할 진데, 뗏목의 무게를 지고 가는 중생의 삶이란, 배낭에서도 여전하다. 나의 경우에는 오스프리 Exos 58을 메고 다녔다. 가벼운 놈이다. 온통 메쉬로 구성된 탓에.(그러나 배낭의 각?이 잡히질 않아 이래저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론 크기도 컸지만.)그러나 토르소를 조정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문제였다. 순례길에서는 치명적이다. 이런 단점은.또한 이 제품은 레인커버가 없다. 따로 챙겨들고 움직였다. 아무래도 제치의 레인커버만 못하다.또한 Exos 58은 따로 침낭 분리수납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Atmos 50이나 Kestrel 48은 배낭 아랫쪽에 지퍼 수납으로 ..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 7 물가와 유통

산티아고 이야기에서 스페인 물가를 빼놓고는, 나의 경우라면, 순례길 여행의 순간순간을 합리적으로 설명해낼 재간이 없다.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는지-영성을 제쳐놓더라도-와 알베르게에서의 식사준비와 힘들 때 들렀던 카페에서의 생맥주 한 잔과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가능했는지를. 들리는 마을 마을 마다에는 적당한 숫자의 가게가 있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영업자의 숫자가 가게의 영업이익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만치 적었다.우리라면 아마도 길거리 대부분을 자영업자들이 진을 쳤을 것이다. 흡사 절집 아랫말의 식당가처럼. 한 둘의 가게이고 보면 독점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생맥주와 커피는 2000원대였다.그것도 순례객들이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안주삼아 먹는 것도 가능한데도.(순례꾼들이 오래 앉아 있지는 않는다고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 6 순례꾼이 황사를 피하는 법

아, 맑은 하늘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내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그런 하늘을.제트기 꽁무니에 비행기 구름이 일어나던 그런 하늘을. 산티아고는 그런 시절을 기억하기에 충분하였다.나는 그런 하늘빛을 본 것으로도 산티아고를 만족한다.잃어버린 것들은 늘 아쉬운 법이다. 처음부터 가지지 않았던 그 무엇보다 더.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 5 (외전 1) 밥심으로 사는 사람을 위한 리뷰

나의 스토브 이야기도 주절주절하였던 판국에 Kocher 이야기를 못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코-ㄱ-허' 정도로 발음되는 독일어 대신 코펠이라는 일본 발음으로. 한국의 순례자는 보통 코펠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더하여 주방이 있는 알베르게에는 쿠커가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캠핑에 익숙한 나로서는 코펠없이 길을 나서기는 못내 찜찜하던 터라. 여행을 위한 1-2인용 코펠 이야기를 조금 하여야겠다. (밥을 꼭 먹겠다는 순례자를 위한 리뷰이다. 나의 경우처럼) 우선 순례길에 챙겨갔던 티타늄 머그와 꼬푸. 그리고 티탄 숟갈. 주둥이가 좁기도 하려니와 밥을 할 수도 없으나 라면 하나 정도는 끓인다. (물론 불조절이 쉽지 않다. 넘치지 않고 끓일려면) 가볍다는 장점 이외에는 모두 불편하거나 또 불편하다. ..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 4 밥 먹는 이야기

먹는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지 않았는가. 혹자는 한국인의 음식에 대한 타박을 널어놓은 이도 있었지만, (주방을 오래 점유한다는 둥 - 이는 외국인들도 주방점유가 심했다는 점에서 그리 흠도 아니다. 음식 냄새가 국제적?이지 못하다는 둥 - 이는 서양 음식 역시 역겨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사대주의이거나 자격지심에 불과할지도. 주방을 선점하기 위해 새벽부터 출발하여 취침을 방해한다는 둥 - 서양인들 역시 새벽부터 부산떠는 이들이 있다. 그저 습관일 뿐일지 모른다.)우리맛에 대한 입맛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한 달 이상의 걷기는 생활이지 여행이 아니다. 그 옛날 이적을 바라는 예수쟁이들이 걸었던 그 길은. 오랜 해외 생활로 나는 그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건만,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