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다방을 추억하며 흑백다방을 추억하며 이레저레 진해를 거쳐가신 분들에게 흑백다방에 대한 한 자락의 얘깃거리 쯤은 있을 터. 다방에 대해서 말하자면, 군사도시의 한 전형으로 진해라는 곳은 참으로 다방이 많았던 곳이었지만, 조금 서늘한 느낌의 다방 하나가 있었으니, '흑백'이 아마도 그에 해당될 .. 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2010.05.09
정월 보름 정월 보름 잠시 잦아든 바람에 새벽안개 사이로 물줄기를 헤쳐 가던 풍경의 붕어는 절집 네 귀퉁이를 돌아 결국 제 자리에 지친 지느러미를 내린다. 일렁일렁 촛불이 타는 새벽, 정한 바위 골라 용왕 먹이실 어머니, 두 눈동자도 밤새 깨어 있을 것이다. 잰걸음으로 떠났보낸 열 나흘의 달, 고쳐 새로이 ..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2010.05.04
산수유, 기슭을 오르다 산수유, 기슭을 오르다 저 밭뙈기도 올해가 끝이다 사람들 발길 이어져 길이 되어, 하나 둘 집이 되어 버리면 늙은 아내와 심어둔 쪽파도 얼갈이도 봄날이 채 여물기 전에 거두어야 한다 노랗게 노랗게 하늘 가리도록 다리 불편한 노인처럼 산수유, 기슭을 오른다.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2010.05.04
선암사 가는 길 선암사 가는 길 여섯 꽃잎을 모아 입술 짙은 꽃이 되었다던 옛 얘기 푸른 한 잎은 산문[山門]에 걸렸네 조계[曹溪], 조계, 귓속 맑은 조계야 잔 물 소리 발에 앵기네 산 속에 길 있어 길 위에 그리운 이 있어 산길 끝나는 곳, 풍경[風磬] 소리 잊히랴 살 냄새가 잊히랴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2010.05.04
철길 옆 이발소 철길 옆 이발소 빨강 뼁끼로 이발이라고 씌여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숭미숭한 사분내미에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반창고 붙여진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찬 바람은 여전하였다 미금이 떨어지는 낡은 수건 몇 장은 뻐덩뻐덩 굳어진 채로 말라가고 구공탄 난로에는 면돗물이 끓고 있었다 널빈지 .. 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2010.05.04
경주 장승 경주 장승 나무 벅수 앞에서 외할머니는 항상 벅수를 "버꾸"라고 하셨다. 바보라는 뜻도 함께 가지는 이 단어를 나는 좋아한다 적당히 느리게 갈 줄 아는 이들 모두에게 주는 찬사이리라. 짧은 여행의 기록 2010.04.22
통영 문화동 벅수 통영 문화동 벅수 통영 세병관을 지나 언덕배기를 내려오며 골목길 옆에 있는 이 벅수 앞에서 나는 두 딸내미의 증명사진을 찍었더랬는데. 문향이 절절한 고장에서 만나는 저 벅수의 호쾌함이란. 너도 웃냐? 나 또한 웃으마 뻐드렁니 이빨도 함께. 짧은 여행의 기록 2010.04.22
실상사 벅수 (2) 실상사 벅수 (2) 웃고 있을까? 다시 또 보면 그이는 언제나의 모습으로 그냥 서 있다. 바람도 비켜가고, 햇빛도 비켜가고, 길 옆에서 다리쉼을 하는 동안 그이는 언제나의 모습으로 그냥 웃었다. 짧은 여행의 기록/미륵을 찾아서 2010.04.22
실상사 벅수 (1) 실상사 벅수 (1) 길을 걷다 만나는 이들과 달리 벅수는 항상 제 위치를 지켜 서 있다. 벅수의 입장에서 본다면야 길 위에서도, 길 바깥에서도 모두 아슬아슬하니 균형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람 같을까? 물 같을까? 그도 아니면 그늘 지우는 나무같을까? 짧은 여행의 기록/미륵을 찾아서 2010.04.22
보령 성주사지 벅수 성주사지 벅수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보다도 벅수의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잊은 듯 세상을 바라보는 저 벅수의 모습은 낡은 것들의 무게를 함께 버텨온 세월의 힘이 있다 달리 내세우지 않아서 좋은 오랜 친구의 얼굴을 하고선 누가 파먹은는지, 귀때기엔 공구리를 바르고도 벅수의 얼골은 웃음상이다. 내 어머니의 손등인 양 가슴 아린다. 짧은 여행의 기록/미륵을 찾아서 201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