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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원지에서

여름 휴가길에 찾는 절집이야 시원하기 그지 없지만, 절집을 잃은 절터, 땡볕 아래 보는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우리를 숙연케한다. 강원도 양양 미천골 계곡에 위치한 선림원지가 그런 곳이다. 절집은 간 곳이 없고, 석탑과 부도와 석등만이 서 있는 절터, 통일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형식을 보여주는 석탑은 부드러운 비례로, 선수행하는 이를 편안케 했을 듯하다. 마음을 깨끗이 밝히듯 석등은 햇볕 아래서도 찬란한데. 10년만의 더위라는 지난 8월초의 땡볕은 절터가 자리한 산턱에서 문득 머뭇머뭇 하였고, 나는 보라빛 무릇꽃에 짝짓기에 나선 무당 벌레를 보았더랬다. 세월의 더께를 털고 절집의 스님들이야 떠나고 없지만, 푸른 풀밭에서 들꽃은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그 속에 벌레들은 가녀린 생을 이어왔을테니. 잠시 스..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가을 저녁이 아름다운 절, 그래서 '미황사'일지는 오직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달마산 미황사를 두고 김태정 시인이 길어올린 싯구는 녹녹치 않은 세월과 시절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하기야 나 역시도 하루 두 세번 지나는 완행 버스를 타고 미황사를 다녀온 적이 있거니와, 그 가을 저녁의 스산함이 묻어나는 들녁을 지나 달마산 중턱에 위의를 갖춘 미황사는 반야용선의 자태를 잃지 않고 빛나고 있던 터였습니다. 어린 딸내미에게 구멍가게에서 딱딱한 얼음과자를 하나 입에 물려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항상 거리를 속여야 했던 여행길. 기차와 버스를 갈아 타고 다니던 지난 날의 기억,미황사의 가을 저녁을 보러 가는 길이었더랬습니다. 이제 김태정 시인의 미황사는 내가 미처 ..

흥국사 무지개 다리

내친 김에 한 곳을 더 가보자. 여천 삼일동의 흥국사는 진달래 꽃으로도 유명한 영취산 자락에 있다. 영취산이라면야 중원땅에도 있고, 인도에도 있는 산이지만, 산이름 영취산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했던 곳에서 따온 이름이다. 산봉우리가 독수리의 부리를 닮은 탓이다. 절집으로 가는 길은 오동도나 향일함 방향과 반대이다. 공단으로 가는 길과 겹치고, 그 안쪽에 따로이 볼만한 거리가 없는 탓에 흥국사를 보려면 시간이 아깝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흥국사는 무지개 다리 하나 만으로도 가볼만 한 곳이다. 절집 들머리가 LG-Caltex 정유 가는 길에 있기에 여천에서 토목 엔지니어로 있을 즈음엔 자주 갔던 곳이다. 내가 본 무지개 다리로는 가장 큰 규모가 아니었나 싶다. 석공의 손길이 빗어낸 아름다운이란.... 물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