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길에 찾는 절집이야 시원하기 그지 없지만, 절집을 잃은 절터, 땡볕 아래 보는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우리를 숙연케한다. 강원도 양양 미천골 계곡에 위치한 선림원지가 그런 곳이다. 절집은 간 곳이 없고, 석탑과 부도와 석등만이 서 있는 절터, 통일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형식을 보여주는 석탑은 부드러운 비례로, 선수행하는 이를 편안케 했을 듯하다. 마음을 깨끗이 밝히듯 석등은 햇볕 아래서도 찬란한데. 10년만의 더위라는 지난 8월초의 땡볕은 절터가 자리한 산턱에서 문득 머뭇머뭇 하였고, 나는 보라빛 무릇꽃에 짝짓기에 나선 무당 벌레를 보았더랬다. 세월의 더께를 털고 절집의 스님들이야 떠나고 없지만, 푸른 풀밭에서 들꽃은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그 속에 벌레들은 가녀린 생을 이어왔을테니. 잠시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