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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풀 산행, 충남 보령 오서산과 정암사

가을 산이야 어디나 좋지마는, 충남 보령의 오서산은 억새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억새도 한 이름값을 하지만, 그 총중에 서해안 최고봉이라는 오서산 정상의 억새는 봄의 진달래 능선을 뒤덮어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내고 가을 물결을 일렁이게 한다. 바다를 옮겨 놓은 자연의 솜씨에 다만 감탄할 따름. 오서산을 오르는 길은 대략 세 가지다. 첫 길은 광천 인터체인지를 나와 오서산 등산로 팻말을 따라가서 상담마을을 통과하여 오르는 길이 있다. 또 하나는 청소면과 청라면의 사이쯤에 있는 '오서산 꿈의 궁전'이라는 곳 근처의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 있다. 마지막 한 길은 오서산 자연휴양림을 통과하여 산행하는 길이 있다. 봄이라면 오서산 자연 휴양림을 통과하여 산행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그 쪽길은 팔부..

용문사? 용문산!

가을 산행의 묘미는 丹楓 구경이 아니다. 헉헉대며 앞에선 산꾼들의 뒷꿈치를 따를라치면, 단풍의 아름다움은 눈에서 멀고 절집의 고즈늑함은 마음에서 멀다. 이를 벗어나 경지에 이르기에는 나의 수행이 모자란 탓일진데, 누굴 탓하랴. 가끔은 흘낏 흘낏 눈요기로 몇 장면의 단풍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속인의 안달은 가파름의 자연이 수이 허락칠 않는다. 용문사 은행이거나 용문사라는 절집이거나, 흔히 듣고 보고 했던 그 용문산이 그랬다. 1150여 고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산이 그리 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절집의 이름에 가리워진 만만함에 발걸음을 옮겼다. 저 용문사의 은행은 계곡의 바람을 등지고 꿋꿋하다는 사실을 아는데는 5시간 이상의 산행이 필요했다. 산행길의 중간 즈음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바위산을 바라보았다. ..

죽란시첩 - 서늘한 초가을 서지(西池)에 연꽃이 구경할 만하면 한 번 모이고

다산이 젊었을 적이었다고 한다. 명례동인가 어딘가에서 한창 젊음과 자신감의 패기가 넘쳐났을 적, 뜻이 맞는 벗들과 함께 계를 만든 모양인데....다산의 정원에 대나무를 두르고서 죽란(竹欄)이라 불렀더랬다. 시사(詩社)라는 것은 시를 쓰는 계 (시계詩契, 혹은 수계修契)의 다른 이름인데, 이른바 계꾼들 사이에 규약을 만들었으니, 시대의 한계 속에서도 생의 여유로움을 구가했던가? 그들의 규약에서 묻어나는 젊음의 절정은 부럽기만 하다. 죽란시사첩 서문 (竹欄詩社帖 序文)/정약용 위아래로 5000년이나 되는 시간 속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가로세로 33만 리나 되는 넓은 땅 위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나라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도 결코 우연..

영평사 구절초 축제에서

주말마다 비가 오는 이유는 주중의 인간 활동 탓이란 설이 있기도 하다. 대기중으로 쏟아낸 차량의 매연이 비알갱이를 형성하고, 주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쉬어도 좋으리!, 라고 왜치는 순간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되어 내린다. 지난 일주일간 열심히 일한 당신 탓으로. 그리하여 자동차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현대인은 주말에 오히려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고. 하여튼, 지난 10월1일, ‘주말쯤 비’라는 일기예보처럼, 하늘은 온통 구름투성이. 해도 열심히 일한 당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라는 사명감에 나섰다. ‘구절초 축제’. 집에서 가까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영동선을 거쳐 경부선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공주를 찾았다. 단풍놀이철이라 서해안선/영동선이 무지하게 막히는 탓에..

강화 정수사

서울에서 가깝다 해서도 자주 발걸음이 옮겨지진 않지만, 지난 연휴엔 애들 숙제를 핑계삼아 강화도로 나섰다. 우선 들린 곳은 강화읍내의 고려궁지. 쇠락한 왕조의 내음이 6월의 감꽃에 묻혔는데, 거칠게 단장된 고려의 궁궐터는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기와의 틈새를 비집어 생의 한 때를 이어가는 들풀들만이 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 발걸음은 고려궁지에서 조금 내려와서, 조선조 철종의 잠저(왕이 되기전에 머물던 사가)인 용흥궁. 옛집의 맵시를 느끼게 해 주는 용흥궁은 볼 만 한 곳이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아내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골목길을 약 50여 미터 들어가 찾을 수 있었다. 용흥궁의 뒤편으로 성공회 성당이 있는데,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라고 하니 함께 둘러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