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561

탈근대군주론, 존 산본마쓰 지음 - 대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소비주의이다.

탈근대군주론, 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 갈무리 한국어판 서문 그렇지만 우리의 위기 국면이 독특한 것은, 지구의 문화, 경제적 통합이 모든 차원 곧 지구적/지역적/국가적/국지적/생태적 차원에서 동시에 위기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미국식 소비자 자본주의라는 단일한 발전모델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주변부 지역의 문화적 조건이 이른바 '중심부'의 조건들과 '가족적' 유사성을 띠고 있음을 보게 되더라도 놀랄 게 없다. 자본주의가 어떤 궁극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면 결국 그건 보편적 혁명이 아니라 보편적 타락일 것이다....... 대중적 에너지를 집중할 구체적 기구 또는 기구들이 없는 선진자본주의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설 한 가지는, 새로운 시민적 자유가 장기적인 급진적 또는 ..

아재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인가, 무작정 온갖 종류의 컴퓨터 언어에 매달렸던 때로 기억한다. 인공지능 언어라고 소개된 Prolog, 미 육군에서 개발했다는 Ada (바이런의 딸 이름으로 최초의 여성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다. 이 놈은 한국에 Complier가 없어 뉴욕대에 접속하여 돌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 외 볼랜드 사의 터보 프로그램 시리즈들.... 앞으로는 컴퓨터 언어 매뉴얼을 쓰는 놈이 성공한다고. (이 말은 지금은 맞지 않은 게 확실해보인다.) 당시에 이미 임인건이란 이가 '터보 C 정복'이라는 '베개만 한 책'이라고 알려진 책을 냈었고 (꽤 성공한 걸로 알고 있다), 여타의 많은 컴퓨터 언어 매뉴얼이 있었다. 볼랜드 사의 터보C 컴파일러를 사용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게 아재 인증이다.) ..

장자 莊子- 제물론齊物論 세상이 나와 더불어 나왔으니 곧 세상과 하나됨이 맞지 않겠나

子游曰:「敢問天籟。」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已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감히 묻건데, 하늘의 피리란 무엇인가? 무릇 피리를 분다는 게 만 가지로 서로 다르나 그 자신에 따라 시켜진 것이다. 모두 취한 바를 따르는 것이지만, 기운을 일으키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若有真宰,而特不得其眹。可行己信,而不見其形,有情而無形。 만약 참된 자기가 있다고 해도 그 흔적을 얻지 못하고, 자기를 뚜렷하게 행하기는 가능해도, 그 형태를 볼 수 없고, 생명의 실체는 있으되 형태는 없다. 道通為一。 其分也,成 也;其成也,毀也。凡物無成與毀,復通為一。唯達者知通為一, 為是不用而寓諸庸。庸也者,用也;用也者,通也;通也者,得也。適得而幾矣。 因是已,已而不 知其然,謂之道。 도를 통하여 하나가 된다. 쪼개짐은 곳 이뤄지는 것이고, 이뤄짐은 곧 ..

장자 莊子- 소요유逍遙遊 기대고 의지함이 없이 끝간데 없는 곳을 노니는 사람

逍遙遊 第一 且舉世而譽之而 不加勸,舉世而非之而 不加沮,定乎內外之分,辯乎榮辱之竟,斯已矣。 만약 세상 모두가 명예롭게 여겨도 힘써 보태지 않으며, 세상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저어함을 보태지 않는다. 내심內心과 외물外物의 분별을 뚜렷이 하며, 영예와 치욕의 경계를 분별할 뿐이다. 若夫乘天地之正,而御六氣之辯,以遊無窮者,彼且惡乎待哉! 故曰:至人無己,神人 無功,聖人無名。 하늘과 땅의 올바름에 올라타서, 자연의 날씨 변화에 따르며, 무궁에 노니는 자는 대체 무엇에 기댈 것이 있을까. 해서 말하기를 지인에게는 스스로에게 기대는 바 없고, 신인에게는 공과에 기대는 바가 없으며, 성인에게는 이름에 기대는 바가 없다고 하였다. 待기대다라는 말은 의지한다는 말이고 결국에는 그것을 좇아 집착한다는 말이다. 한자 無의 뒤에 앞에..

경화역에서 (3)

구름, 달 길러 가는 철둑길 갈매기 날개짓 울음 퍼덕이는 건널목 보안등 불빛같은 벚꽃 가지 한 다발 뒤편으로 철조망 붉은 가시철 담장 너머가 밝다 돌블록같은 손바닥 짚어 짚어 경화동 2가 파출소 무기고 담벼락을 끼고 방석집 술청을 거쳐온 사내들 등짝들이 흘러들면 밤 갈매기 더욱 끼루룩거린다. 집을 잃은 사내들을 기다리는 밥을 짓는 두레박 소리 술자욱 눈물자욱 떨구어진 작업화를 비켜두고 새 순 새 잎으로 돋아나는 한 봄 날의 시간들, 자라날 것들은 모두 밤을 다투어 나오나니, 정지간 깜빡잠으로 오는 새벽 화차 고동에 묻어오는 명자꽃 붉은 엄마의 꿈이 깊다.

경화역에서 (2)

한꺼번에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쇠뜨기 푸룻푸룻한 철길, 올리브빛 더미를 감싼 방수포 퍼덕이며 서쪽으로 달리던 화차와 좁아진 운동장 낡은 교사(校舍), 먼지가 사르락거리던 노을 빛 마루에 남겨진 시간과 가쁜 숨으로 가랑가랑한 파도를 밀쳐내는 경화동 2가, 큰 대섬 작은 대섬을 돌아나오는 할메 뱃가죽같은 파도의 소리와. 느티는 항상 작은 열매를 후둑이며 유혹했지만 타박타박 집으로 가는 소년, 동무같은 제 무게를 뒤로 남기는 땅거미, 나의 손 끝은 늘 그 저녁으로 닿지 못하여 골마루 촛칠광을 내던 맑갛게 반질거리던 깻돌을 만지작 거린다. 한꺼번에 가질 수 없는 것들. 타닥 타닥 교사를 무너뜨리는 발동기 엔진의 숨가픈 소리와 바다를 떠난 갈매기의 멀고 또 가까운 울음과 분필을 털어내는 소년의 늦은 오후는..

경화역에서 (1)

잊지 않고 오는 날들이 있다. 아니다, 잊힐만 하면 오는 날들이 있다. 삼팔장 시장길 좌판에 떠밀린 등짝들이 헤진 속곳으로 기운 소쿠리만큼 가벼운 날이. 더 이상 화차가 다니지 않는 사비선(四肥線)[1] 철길을 따라 오지도록 벚꽃 일렁이는 날이. 경화역 함석 지붕의 소화물 창고를 에둘러 녹슨 짐자전차의 갸르릉 쇳소리로 꽃바람만 화안하던 한 낮을 지나 찬란하였으되 햇살마저 버거워한 어깨를 남기며 다시 오지 않는 한 사람의 날이. 굽고 굽은 철길을 비켜갔던 화차의 떨림으로 떠나고 다시 또 하루 하루 잊는지 잊히는지 가만히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런 하루에만 꽃이 핀다. [1]사비선은 지금은 없어진 제4비료공장과 군부대를 잇는 철길이다.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다시 0) - 즉비시명의 논리

수련이 가득한 모네의 정원. 이 그림은 아니지만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수련그림은 너무 작은데 놀랐다. 내가 가진 상相은 초등학교 시절 미술책의 도판에 기본한 것이었기에. (물론 벽을 채우는 커다란 그림도 있었지만) 저 하얀 수련은 수련이다. 이 경우 앞의 하얀 수련은 현상계로서의 수련 사물事物이다. 그러나 뒤의 수련은 우리 머리 속이나 언어상으로 개념화된 수련이라는 상相이다. 즉, 하얀수련은 수련과 동일률이 성립하지 않는 즉비(卽非)가 된다. 수련은 곧 수련이 아니다. (미다) 그러므로 (是故) 이제 저 하얀 수련은 수련이 된다. 요컨대 수련이라는 이름을 얻는 (是名) 것이다. (기다) 이런 이해의 방법과 별개로 물상을 확장 혹은 축소할 경우에 즉비(卽非)를 생각해보자. 즉, 쪼가리진(少) so..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32) - 상에 머물지 말고 동하지도 말며 보살행을 수행하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 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다른 어떠한 공덕보다 높다는 이 경의 아름다움을 이웃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 어떠한 상에도 얽매이지 말고 여여히 동하지 않고 연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유위법 (법이 있다고 믿고 법을 위해서 하는 일체의 것, 또 그 법 자체)은 물거품 같이 스러질 것이기에. 이 구절의 현장 번역본을 보면 云何為他宣說、開示?如不為他宣說、開示,故名為他宣說、開示。 爾時,世尊而說頌曰: 諸和合所為 如星翳燈幻 露泡夢電雲 應作如是觀 어떻게 이웃을 위해 베풀어 설법하고 열어보이는가 이웃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고 열어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이웃을 위해 베풀어 설법하며 열어보이는 것이다. 이 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모든 뭉쳐진..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30) - 세계는 범부이생의 탐욕과 집착의 산물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세계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곧 한 덩어리의 상이며, 여래는 한 덩어리의 상은 곧 한덩어리의 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한 덩어리의 상일 뿐이라고 설한다. 한 덩어리 상이란 곧 이를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다만 어린석은 범부와 제각각의 중생들이 그 세상(의 사물)을 탐하고 집착할 뿐이다. 이전 장에서 貪着을 여읜 것을 보살이라 하였으니 범부이생의 탐착하는 삶은 딱 거기까지이다. 현장의 번역을 보자. 何以故?世尊!若世界是實有者,即為一合執,如來說一合執即為非執,故名一合執。 佛言:善現!此一合執不可言說,不可戲論,然彼一切愚夫異生強執是法。何以故? 세계란 것이 실재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뭉친덩어리(집착)일 것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