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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오헨로길 22 - 번외(番外)

88개의 번호도 20개의 별격 번호도 아닌 번외 사찰들이 있다. 가람의 규모를 갖지 못하고 홑집으로 된 곳들이 많다. 마을의 대사당이 그러하고 또 다른 대사님이거나 지장보살을 모신 단촐한 절집이 그러하다. 그러한 작은 절집을 참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구나 이리 번외 절집이라고 밝히고 있는 다음에야. 삼배를 올리고, 밥주발같은 좌종을 치고, 반야심경을 염불할 일이다. 커다란 목탁까지 있음에랴.

시코쿠 오헨로길 21 - 대사당(大師堂)

시코쿠 순례길에 88개 사찰, 혹은 20개의 번외 사찰에만 관심을 가졌지, 대사당 (다이시도)은 그러려니 했다. 이런 절집은 대사(大師)의 칭호를 받은 큰 스님을 모시는 곳으로, 때로는 이름도 없이 그냥 나무아미타불의 붉은 깃발만이 표식인 곳이 많다. 마을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보이며 때로 헨로들에게 길손의 잠자리나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깃발이 보이면 신사가 아니니, 법당을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코쿠 오헨로길 19 - 시코쿠 헨로길의 경쟁력

*그곳을 살고 있는 분들의 생활과는 별개로 순례길에 나선 헨로상들에게 있어 시코쿠는 경쟁력을 가진 곳이다. 2019년의 3월의 1차 순례에 이어 2023년 3월 다시 시코쿠를 찾았다. 지난 순례길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예전의 처음 그 감동은 조금 식어버린 느낌도 있긴 하다. 이제 그 길의 경쟁력을 짚어본다. 1. 시코쿠의 풍광의 형성 - 자연 풍광의 형성은 대부분 자연환경의 기여에 의한 것일 터이다. 일본의 경우는 해양성 기후조건에 따른 풍부한 강우량과 높은 산과 짧은 강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의 차이를 기준한다면.) 우리와 다른 난방구조 (다다미방과 같은)와 이로 인한 땔감의 차이에 힘입어 삼림은 무성하고 이는 다시 풍부한 지하수와 높은 하천 수위 (하상계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2) -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불교적 세계관에서 물질의 특성을 논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세 마디는 재미있다. 많은 특성들 중에서 대표적인 셋 만을 논한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셋이 특수한 관계와 조건하에서의, 곧 의존적인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후자를 지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불(不)은 '없다'가 아니라 '생기지 않는다' (생기지 않게 해야한다)로 읽는다. 쌍으로 말하여진 물질의 성질(드러남, 연기로부터의)은 설명의 대칭성을 갖는다, 고 보아야 한다. 이제 다시 읽어보자면, 모든 만물은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자아란 것이 없기에' 다만 조건 속에서의 나타남이므로, '태어남과 죽음(生, 老死)이' 생기지 않게 되는데 (생기지 않으려면), 이의 원인(조건)이 되는 업의 행위 혹은 습관(有)으로 인한 '더러움과 깨끗함'이 또한 생..

시코쿠 오헨로길 18 - 별격 사찰 20개소

시코쿠 오헨로 88개소의 사찰은 홍법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에도시대부터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부분은 석가여래나 대일여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약사보살을 본존불로 모신 사찰들이다. 이러한 사찰과 별개로 20개소의 사찰을 별격(別格) 으로 (장사속이라 불러도 어쩔 수 없다지만 1968년에) 구성하여 번외 영장으로 부르고 있다. 홍법대사를 본존(?)으로 모신 곳도 더러 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긴 하다만, 아무나 부처라고 주장한다면 흔히들 이단으로 칭한다. 별격(別格)이라고는 하지만 格이란 것이 참배객의 수준도 아닐 뿐더러 더구나 사찰 절집의 격은 아니다. 단지 때때로 오헨로 길에서 조금 멀어져 있을 뿐이다.) 20개소는 88개소와 합쳐 108이란 숫자를 만들고, 10..

이제향 -' 어머니의 난닝구'를 읽고서

이제향 시집, 안경 너머의 안녕, 미학 어머니의 등에는 늘 연탄 한 장이 타고 있다 난닝구 구멍마다 붉은 맨살이 올라와 듬성듬성 화근내를 내며 땀 절은 소금 간으로 밭고랑 하나를 금세 삶아버린다. 연탄의 구멍이 목숨이라는 듯 한 번씩 허리를 들어 바람통에 빠끔히 열어주지만 구멍마다 새는 가스는 뼛속까지 노랗게 어지럽기만 하다. 시린 오금을 펼 때마다 햇살 주름은 하얗게 타고 몸빼 바지 발목까지 어느새 한 움큼 고인 저녁 연탄재 어머니 난닝구 화덕엔 호미 구멍마다 양대 콩이 열린다. * 자잘한 일상, 삶의 한 순간을 스쳐가는 사람의 일생이 난닝구 한 장과 연탄 화덕으로 겹쳐지며 살아난다. 구들장 찢어진 틈으로 노오란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 국물로 목숨을 건사했던 기억이 없던들, 연탄화덕의 불구녕을 몰래열..

쌍봉사 삼층전과 철감선사탑의 가릉빈가

몇 남지 않은 목조탑이었다는데, 8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다시 지어지고, 지금은 보물의 지위를 잃었다.예전의 8작 지붕이 4모의 모둠 지붕으로 탑의 형태를 얻어 보륜을 얹었다 한들아름다운 한국 목조의 한 시절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그림 한 장 도면 한 장 남겨두지 않은 대목장들, 그것이 쟁이들의 한계 아닌 한계일 것이다.(그러고도 모든 그림이 가슴과 머릿속에 있다고 위안을 삼았던 사람들.  천대받았던 직업의 한계였을라나.) 지식을 공유하지 않았거나 혹은 못하였거나 간에. 지장전이다. 목조 시왕상 전체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철감선사탑을 찾아간다. 당우 뒤편으로 사사대 길을 지나서 언덕배기에 놓여있다.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준다.지붕의 섬세함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돌쟁이의 솜씨..

운주사에서

운주사는 봄날이었다. 2월 초순의 날에도. 애들이 꼬맹이였을 때 온 적이 있었지만. 꽤차 오랜만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선화로 그려진 미륵보살을 찾긴 쉽지 않다. 비례가 조금 허트러진 듯 하지만 층지붕의 날렵함만은 잊지 않았다. 탑신에는 떡살 무늬같은 꽃그림이 앉았다. 4장의 꽃잎이라, 돌밭에 핀 산도라지이려나?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 했던가 (天圓地方), 혹은 사람의 일은 어딘가 모난 곳이 있다지만, 하늘의 이치는 원만하게 굴러간다는 뜻이련가? 미륵의 집은 저리 생겼다. (인근 보성 대원사의 미륵집도 저리 생겼으나 보물에서는 빠졌다.) 나중에 오시게 될 때에도. 부부로 온다는 발상이 새롭다. 와서 부부가 될 인연인 것일지도.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세상의 이치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