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167

남해금산

누군가로부터 어디 어디가 좋다는 답사이야기를 듣게된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흔히들 좋고 또 좋다고 한 이야기 중에 꼭 새겨들어야 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이가 누구와 그곳에 다녀왔는가 하는 것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어느 계절에 다녀왔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덧붙여 왜 다녀왔는가를 살필 줄 안다면야 금상첨화지만.  둏아라 둏아라, 이리 시작하는 이야기에는 바로 그 누구와 함께 어느 계절에 왜 그곳에 다녀왔는가가 으레 숨겨져 있게 마련이어서, 여간 눈치가 아니면 절집에서 새우젓을 얻어먹을 요량은 버려야 할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시인의 마을 역시 사실은 바로 그 뒷그림자를 숨기고 있는데, 그것은 그것을 숨겨야 조금은 읽는 이를 원래의 천연함으로 더 가깝게 데려갈 수..

충남 서산 개심사에서

무명(無明)이라 일렀던가? 내 삶 또한 그 무명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진대, 지혜의 칼로 무명을 갈랐다는 혹은 그러할 칼을 찾는다는 심검당(尋劍堂)이 있어 개심사는 외롭지 않다. 인연이 없는 자는 가는 곳마다 밥때가 지난 마당개처럼 헐헐거리듯 제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비록 개심사의 대웅전 (조선 초기의 주심포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보물 143호로 지정되어 있다)이 보수 공사 중이라 한들, 저 천연스런 대목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심검당 하나 만으로 개심사는 찾아봄직한 절집이다.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기둥과 창방의 자연이 만든 곡선은 절집의 수행이 자연의 그것과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가 없음을 관념이 아닌 실제적 사물로서 구현한 대목장의 깨달음이리라. 절집을 보고, 산을 에둘러 내려오..

억새풀 산행, 충남 보령 오서산과 정암사

가을 산이야 어디나 좋지마는, 충남 보령의 오서산은 억새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억새도 한 이름값을 하지만, 그 총중에 서해안 최고봉이라는 오서산 정상의 억새는 봄의 진달래 능선을 뒤덮어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내고 가을 물결을 일렁이게 한다. 바다를 옮겨 놓은 자연의 솜씨에 다만 감탄할 따름. 오서산을 오르는 길은 대략 세 가지다. 첫 길은 광천 인터체인지를 나와 오서산 등산로 팻말을 따라가서 상담마을을 통과하여 오르는 길이 있다. 또 하나는 청소면과 청라면의 사이쯤에 있는 '오서산 꿈의 궁전'이라는 곳 근처의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 있다. 마지막 한 길은 오서산 자연휴양림을 통과하여 산행하는 길이 있다. 봄이라면 오서산 자연 휴양림을 통과하여 산행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그 쪽길은 팔부..

용문사? 용문산!

가을 산행의 묘미는 丹楓 구경이 아니다. 헉헉대며 앞에선 산꾼들의 뒷꿈치를 따를라치면, 단풍의 아름다움은 눈에서 멀고 절집의 고즈늑함은 마음에서 멀다. 이를 벗어나 경지에 이르기에는 나의 수행이 모자란 탓일진데, 누굴 탓하랴. 가끔은 흘낏 흘낏 눈요기로 몇 장면의 단풍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속인의 안달은 가파름의 자연이 수이 허락칠 않는다. 용문사 은행이거나 용문사라는 절집이거나, 흔히 듣고 보고 했던 그 용문산이 그랬다. 1150여 고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산이 그리 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절집의 이름에 가리워진 만만함에 발걸음을 옮겼다. 저 용문사의 은행은 계곡의 바람을 등지고 꿋꿋하다는 사실을 아는데는 5시간 이상의 산행이 필요했다. 산행길의 중간 즈음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바위산을 바라보았다. ..

영평사 구절초 축제에서

주말마다 비가 오는 이유는 주중의 인간 활동 탓이란 설이 있기도 하다. 대기중으로 쏟아낸 차량의 매연이 비알갱이를 형성하고, 주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쉬어도 좋으리!, 라고 왜치는 순간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되어 내린다. 지난 일주일간 열심히 일한 당신 탓으로. 그리하여 자동차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현대인은 주말에 오히려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고. 하여튼, 지난 10월1일, ‘주말쯤 비’라는 일기예보처럼, 하늘은 온통 구름투성이. 해도 열심히 일한 당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라는 사명감에 나섰다. ‘구절초 축제’. 집에서 가까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영동선을 거쳐 경부선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공주를 찾았다. 단풍놀이철이라 서해안선/영동선이 무지하게 막히는 탓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