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218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3) -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무지증무득 無智證無得

반야심경의 많은 축약이 경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이란 구절 역시 그러하다. 단순하게 새기자면, 앎 혹은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정도이다. (중국식 한자는 知와 智 의 구분이 명확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고 갑골문엔 知보다 智가 먼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智 는 사냥 혹은 전쟁의 기술 쯤에 해당하는 앎이나 지혜이다.) 좀 더 친절하자면, 앎 혹은 지혜가 없으니 얻을 것도 없다로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앎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한 앎이고,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가? (질문을 좀더 해 보자면,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알게되고,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얻게되는가, 이다.) 이 문구의 처음을 따라가 주어를 찾아보면, 是故空中, 즉, 공..

반야바라밀다심경 - 唐 지혜륜 智慧輪 스님 본

*반야심경에는 廣本(大本)과 略本(小本)이 있어 흔히 암송하는 반야심경은 원숭이 오공(悟空:悟字배의 스님이라는 설이 있다. 그보다는 공을 깨쳤다는 게...)을 데리고 오천축국을 다녀온 삼장법사 현장 스님의 약본이다. 결론적으로 인연과 서사敍事가 빠져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지혜륜 智慧輪 스님(이 분도 삼장이시다)이 번역한 광본의 반야심경을 옮겨둔다. *불경은 듣기(聞)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쁨으로 연습(學)하고 실천(行)하는 데 의미가 있다. 광본의 처음과 끝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약본의 정종분(正宗分)은 그것을 잘라버린 것으로 불교를 개인적이고 폐쇄적이며 수동적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 般若波羅蜜多心經 唐上都大興善寺三藏沙門智慧輪奉 詔譯 如是我聞。一時薄誐梵。住王舍城鷲峯山中。與大苾蒭眾。..

중세문화이야기, 존 볼드윈 지음, 박은구, 이영재 옮김 -고딕, 신의 집을 짓는 지상원리, 적정비와 아름다움 그리고 신적 빛과 조명

중세문화이야기, 존 볼드윈 지음, 박은구/이영재 옮김, 혜안 제1장 정치적 배경 1259년 ...영국 군주와 프랑스 군주의 영토를 재정립하는 협약을 체결하였고, 13세기 중엽에 왕실령에서 확보된 이러한 정치적 평화는 (25쪽) ... '프랑스의 심장부이자 평화의 땅'이었던 몽에리Montlhery성은 프랑스 왕국의 정치적 안정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26쪽) 이 정치적 과업의 위대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중세 유럽이 겪었던 정치적 경험을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승리(BC 31)로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 (AD181)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은 지금까지 누린 적이 없었던 지속적이고도 오랜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3세기가 되자 내부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여 4세기에는 야만족..

코젤렉 개념사 사전 20 헌법, 국민은 헌법 상위에 헌법제정 권력으로 존재한다.

코젤렉 개념사 사전 20 헌법, 송석윤 옮김, 푸른역사 입헌주의의 시작 - 혁명전의 용어 (북아메리카와 프랑스에서 두 성공적인 혁명으로 근대적 헌법들이 제정되었을 때와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는) 자연법적 계약론은... 자연상태와 결별하고 국가로 결합하는 합의(pactum unionis)와 정부 형태의 확정 (pacturm ordinationis) 및 통치자에게 복종하겠다는 서명 (pactum subiectionis)으로 이루어진다. ...Verfassung계약과 기본법은 동일한 사안의 두 측면으로 보인다. Verfassung 계약이 그 과장에 치중하는 반면에 기본법은 그 생산물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Verfassung은 계약을 통해 형성되고 기본법적으로 규정된 국가의 정치적 상태이다...계약에 근거할 때 ..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 페르디난트 자입트- 자발적 빈곤을 통한 천국으로의 길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옮김, 현실문화 | 들어가며 수십 년 전부터 사람들은 정치사를 피상적인 관찰방법이라고 매도하면서 정치사 대신에 역사적인 삶에서 '심층적인' 추진력을 찾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사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물론 정치적 생활의 우위를 말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계는 정치적 유형에 의해서 가장 쉽게 파악될 수 있고 또 가장 잘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시대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해왔고, 삶을 계획하거나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가치있다고 생각한 인생에 대해서 어떤 희망을 품었는지가 중세의 정치 양상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

연옥의 탄생, 자크 르 고프 - 중세적 사후공간, 제3의 처소

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최애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카톨릭적 소양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교적 지옥 개념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나의 경우 언제나 now & here! (수행과 실천, 혹은 관조와 연습)만이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아날 학파의 자크 르 고프의 저작, '연옥의 탄생'은 오랜 숙제 같은 것이었다. 단편적인 이해로서의, 연옥이라는 개념의 등장, 대도(代禱- 煉禱)와 면죄부 그리고 이어진 종교개혁이라는 피상적 관심을 좀 더 깊이 파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하여 불교의 지옥과 윤회라는 개념까지 버무려 동과 서의 '서로 다름'이라는 데에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던 터였다. 어쩌면 그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죽은 자를' 기도하는 것과 '죽은 자를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2) -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불교적 세계관에서 물질의 특성을 논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세 마디는 재미있다. 많은 특성들 중에서 대표적인 셋 만을 논한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셋이 특수한 관계와 조건하에서의, 곧 의존적인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후자를 지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불(不)은 '없다'가 아니라 '생기지 않는다' (생기지 않게 해야한다)로 읽는다. 쌍으로 말하여진 물질의 성질(드러남, 연기로부터의)은 설명의 대칭성을 갖는다, 고 보아야 한다. 이제 다시 읽어보자면, 모든 만물은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자아란 것이 없기에' 다만 조건 속에서의 나타남이므로, '태어남과 죽음(生, 老死)이' 생기지 않게 되는데 (생기지 않으려면), 이의 원인(조건)이 되는 업의 행위 혹은 습관(有)으로 인한 '더러움과 깨끗함'이 또한 생..

이제향 -' 어머니의 난닝구'를 읽고서

이제향 시집, 안경 너머의 안녕, 미학 어머니의 등에는 늘 연탄 한 장이 타고 있다 난닝구 구멍마다 붉은 맨살이 올라와 듬성듬성 화근내를 내며 땀 절은 소금 간으로 밭고랑 하나를 금세 삶아버린다. 연탄의 구멍이 목숨이라는 듯 한 번씩 허리를 들어 바람통에 빠끔히 열어주지만 구멍마다 새는 가스는 뼛속까지 노랗게 어지럽기만 하다. 시린 오금을 펼 때마다 햇살 주름은 하얗게 타고 몸빼 바지 발목까지 어느새 한 움큼 고인 저녁 연탄재 어머니 난닝구 화덕엔 호미 구멍마다 양대 콩이 열린다. * 자잘한 일상, 삶의 한 순간을 스쳐가는 사람의 일생이 난닝구 한 장과 연탄 화덕으로 겹쳐지며 살아난다. 구들장 찢어진 틈으로 노오란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 국물로 목숨을 건사했던 기억이 없던들, 연탄화덕의 불구녕을 몰래열..

박규리 시인의 '치자꽃 설화'를 읽으며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 2004) -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다시 읽으며....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겄네. * 흔히 인터넷 상의 시해설에서는 이 시를 제삿날과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제삿날의 불빛은 양반네들이 논길을 따라 등롱(燈籠)을 들고 큰집을 찾아가는 늦은 밤 시간대이고, (예전의 제사는 자정을 지나 지냈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