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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님들의 서울 나들이

춘천 박물관의 영월창령사지 오백나한님들이 서울 나들이를 하셨다기에 다녀왔습니다.그저 우리의 모습을 하고 계신 나한님들은 종교의 본뜻이 세속의 초월이 아니라 세속에서의 평화와 안식임을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가르침입니다.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 자신을 닮아있는 나한님들을 뵐 수 있어 좋았습니다.거居하되 그 속에서 물들지 않음이, 경계를 허물고 세속에서 실천하는 참모습일 겁니다.영월 창령사지 오백나한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한 가닥 풍경소리입니다. 대답은 이미 그 물음 속에 있다고 하네요......

돈 키호테 : 편력기사가 되어 떠날 수 있는 그대는 행복할진저

2014년인가 알제리의 알제를 갔던 적이 있다. 그곳의 한 호텔 뒷편으로 세르반테스가 갇혀있던 혹은 포로생활을 했던 곳이었다고 들었다.어딘가 찍어둔 동굴 사진이 있을텐데......찾지를 못한다. 대신 알제의 호텔 가는 인근 도로의 벽면을 옮긴다.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곳 역시 하루를 묵었던가 어쨌던가 하면서 세르반테스의 얘기를 들었었다. 해적에게 붙잡혔을 때인가? 나의 기억이란.당시의 오랑은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고, 오랑까지도 오스만제국과의 전장이었다. 역사는 그 당시의 오랑을 레판토 해전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래, 돈 키호테를 읽어보아야겠다, 라고 생각했었다.그러고도 이런 나의 계획은 다시 몇년을 기다려야 했다. 2018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스페인 남부를 돌아볼 적에, 톨레도를 하루 코스인가로 ..

시코쿠 오헨로길 14 - 돌탑 이야기

시코구의 절집은 진언종 계열의 일반적 가람 배치를 따르고 있다.일주문이 없는 산문(인왕문)을 지나면 종루가 있고, 본당 (본존불을 모신 곳)이 나오고 그 왼편 혹은 오른 편으로 홍법 대사를 모신 대사당이 있다.별도의 당우가 본존불 이외의 불보살을 모신 관음당이나 부동당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납경소와 스님들의 거처가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도. 백제계의 1탑1법당, 경주의 불국사가 2탑1법당의 형식이라면 일본의 절집 (진언종계)에는 탑이 없다. 대신 2층 목조탑인 다보탑이 본당의 뒤편에 놓인다. 절집 마당에는 기능적 목적의 석등만이 덩그마니 놓여있는 경우가 태반이다.이는 탑 중심의 신앙이 불상을 모시고 있는 법당(본당) 중심으로 옮아갔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 중심..

만초니, 약혼자들 (4) - 나쁜 일을 하는 자들은 결코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24장 (신부 돈 압본디오는) 앞으로 닥칠 다른 위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이 어떻게 끝날까? 몽둥이는 늘 밑으로 떨어지고, 넝마 조각은 바람에 날리게 마련이야... 하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내가 죄를 뒤집어써야 한다니.....추기경 저하께서 나를 끌어들인 뒤, 나를 보호하기 ..

시코쿠 오헨로길 13 - 인형들의 땅

쇠락하는 마을을 거쳐가는 길에 인적이 드물었다. 빈집은 인간의 그것과 닮아 함께 낡아가고 있었고,그나마 마당을 채우는 꽃은 봄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은 해를 바꾸어 청춘을 회복한다지만,필멸의 인간에게는 그런 자연의 회복이 부러울 뿐이다. 시코쿠를 걷는 동안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인형들을 만날 수 있어적으나마 위로가 되었다. 길손들을 반겨주는 인형들.....

시코쿠 오헨로길 12 - 기차요금 이야기

시코쿠 순례를 시작하자면, 인천공항에서 다카마쓰까지 이동한 후 기차로 다카마쓰 역에서 반도역으로 가게된다. 통상 반도역에서 오헨로길을 시작한다. 1번 사찰이 역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차요금을 얘기할 차례이다. 경로로 보면 다카마쓰 (高松) - 이타노 (板野) - 반도 (板東) 까지 이동한다. 사실 다카마쓰에서 반도까지는 완행 보통열차가 몇 차례 있기는 하나 시각을 맞추기도 어렵고, 길손으로서는 시간도 아껴 얼른 시작하고 싶기에 급행을 끊었다. 급행의 경우 반도역에 서지 않아 중간 기착지로 이타노까지 끊은 것이다. 다카마쓰 (高松) - 이타노 (板野) : 급행 이타노 (板野) - 반도 (板東) : 완행 보통으로 끊었었다. 철도 안내원에게 부탁하여 승차권을 끊고 기차에 올라보니 기차표는 이랬다. 다..

시코쿠 오헨로길 11 - 마을에 울려퍼지는 범종 소리

양평 상원사 동종이 왜종이라 하여 국보가 취소되었다. 오래전의 일이다.상원사 동종의 짝퉁 논란에 대한 신문기사도 있고하여 일본 범종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시코쿠 길은 흥미로왔다.특히 우리와 달리 일본 절집에서는 순례꾼이 절집 들머리의 동종을 타종하여 자신의 예불참석을 법당에 또 본존불께 알린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종소리가 울려퍼지는 인근 마을에는 조금 불편한 노릇일 것이다. 기사와 문헌 상으로만 본 일본의 종모양에 대해서 시종 궁금하였는데, 마침 彌谷寺의 툇마루에 동종이 덩그러니 놓여 있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해서 양평 상원사의 동종이 딱히 짝퉁이라 그러기도 그러하고, 아니그러기도 그러한 상황이라고 밖에. 오대산 상원사 동종 양평 상원사 동종 일본 시코쿠 미곡사 동종 종 모양 명색이 국보인..

시코쿠 오헨로길 9 - 꽃밭에서

이제는 꽃밭을 잃어버린 시절이다. 노랫말 속에 올해도 피던 과꽃이 보기 드물어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거니와,꽃밭 가득 핀 꽃을 좋아했던 누이들이 꽃밭에서 아주 사는 일도 없어졌다. 시코쿠를 걸으며 만나게 되는 꽃밭,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꽃밭이었다. 밭에 남새와 더불어 꽃을 키워내기에 꽃밭이란 단어는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꽃을 봉헌하고, 그 꽃을 밭 한쪽에서 키우는 사람들,시코쿠에서 만날 수 있는 꽃밭이었다.

시코쿠 오헨로길 8 - 도장값

집 뒷산을 거쳐 절집을 다녀옵니다. 약사불을 모신 법당보다, 절집 서편의 지장보살을 먼저 찾습니다. 이제는 그 어딘가의 삶으로 환생하셨을 아버지를 빌기 위함입니다. 복이 되는 밭이라는 복전함에 천원 짜리 한 장 넣어 봅니다. (어느 스님의 말씀따나 불교를 그리 싫어했다던 이황이 그려진 지폐입니다.) 이제 법당에 들러 약사불을 찾습니다. 영혼의 평화와 세상이 정의롭고 따스해지기를 빕니다. 동편의 산신당에 올라 우리네 절집에 스며든 산신과 혼자서 깨우쳤다는 독각할배도 뵙습니다. 일본의 절집에는 유난히 지장보살이 많습니다. 육(六)지장보살도 많습니다. 우리보다 기복적 성향이 강합니다. 기복이야 우리네가 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네야 기복 뿐이겠지요. 여튼 절집에 들러 납경장이란 스탬프북에 도장과 手印 (묵서..